4연속 경질됐지만... 그래도 무리뉴는 무리뉴였다

이준목 2024. 1. 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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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클럽과 대표팀의 감독 후보로 거론... 다음 도전 무대는 어디?

[이준목 기자]

 AS로마의 감독 호세 무리뉴가 2023년 12월 30일 토리노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벤투스와 로마 간의 이탈리아 세리에 A 축구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이 AS로마에서 경질당했다. 로마 구단은 1월 16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무리뉴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팀을 떠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21-22시즌부터 로마의 지휘봉을 잡았던 무리뉴 감독은,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던 올시즌 일정의 절반을 남겨둔 상황에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포르투갈 출신의 무리뉴 감독은 21세기 현대축구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선수로서는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하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으나, 일찍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어 바비 롭슨, 루이 판 할 등 명장들의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통역관, 스카우터, 코치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무리뉴는 2000년 모국인 포르투갈 리그의 SL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은 것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UD레이리아를 거쳐 2002년 FC포르투의 사령탑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무리뉴는 포르투를 이끌고 2년 연속 리그 우승과 유로파리그-유럽챔피언스리그를 연이어 제패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후 빅리그로 진출하게 된 무리뉴는 첼시-인터밀란-레알 마드리드-맨유 등 여러 명문팀의 지휘봉을 잡고 성공신화를 이어나가며 당대 최고의 우승청부사로 등극했다. 무리뉴는 사상 최초로 유럽 3대 빅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린 감독이 되었고, 최정점이었던 2009-10시즌에는 인터밀란에서 트레블(3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무리뉴는 리그 우승 8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 각 2회,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우승 1회 등 총 26개에 이르는 엄청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러한 놀라운 업적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유럽축구연맹(UFEA)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감독 10인'에 요한 크루이프, 알렉스 퍼거슨, 아리고 사키 등 세계적인 명장들과 함께 현역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스페셜 원' 무리뉴의 내리막길

무리뉴의 대표적인 별명이 된 '스페셜 원'은, 2004년 첼시 1기 시절 취임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당시만 해도 아직 인지도가 낮던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언론 앞에서 무리뉴는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감독이 아닌,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후 거침없는 독설과 카리스마는 우승과 더불어 무리뉴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무리뉴의 커리어는 서서히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 무리뉴는 첼시 2기 시절이던 2015년 12월 성적부진으로 인하여 전격 경질 당했다. 당시 첼시는 전 시즌 리그 챔피언이라는 위상이 무색하게 강등권에 근접한 리그 16위라는 충격적인 추락에 빠진 상태였다. 무리뉴는 2007년에도 첼시에서 경질 당한 적이 있으나 당시는 구단과의 불화 때문이었고, 성적 때문에 경질된 것은 사상 최초였다. 무리뉴의 내리막길을 알리는 시작점이었다.

무리뉴는 이어 201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9년에는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의 지휘봉을 연이어 잡았으나 모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 하고 또다시 경질 당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그나마 첼시와 맨유에서는 우승컵이라도 들어올리며 무리뉴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토트넘에서는 리그컵 대회 결승을 코앞에 두고 전격 경질되며 커리어 초창기인 벤피카와 레미이라 시절을 제외하고 최초로 무관에 그치는 불명예를 남겼다. 무리뉴 감독도 이것이 두고두고 앙금이 남았는지, 구단을 떠난 뒤에도 "토트넘은 내가 감독을 맡은 구단 중 유일하게 애착이 남지 않은 팀"이라고 디스하기도 했다.

무리뉴는 2010년대 들어 빌드업과 공간압박으로 대표되는 현대축구의 전술적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한때 선수단 장악력이 최대 장점이라던 평가가 무색하게, 레알 마드리드 시절 후반기부터 호날두-카시야스-아자르-포그바-은돔벨레 등 가는 팀마다 주축 선수들과의 불화설에 시달렸다. 강한 독설과 자극으로 선수를 길들이려는 무리뉴의 방식이 요즘 젊은 선수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는 평가다. 무리뉴 감독이 여러 팀에서 경질의 악순환을 반복한 데는 이미 선수단 내 인망을 잃은 상태였다는 것도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무리뉴는 로마에서 경질되며 최근 4연속이자 감독 커리어 통산 5번째 경질이라는 아픔을 피하지 못했다. 무리뉴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로마는 2021-22시즌과 2022-23시즌 연속으로 리그 6위에 그치며 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놓쳤다. 올시즌도 8승 5무 7패로 세리에A 9위에 그치고 있으며 FA컵인 코파 이탈리아 8강에서는 라치오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무리뉴를 바라보는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로마는 무리뉴가 지휘했던 이전의 빅클럽과는 달리, 선수층이나 재정적인 면에서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다.

특히 부임 첫 시즌에 신설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는 초대 우승팀에 등극하며 로마의 14년 무관 행진을 깨고 사상 첫 UEFA 클럽대항전 트로피를 쟁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무리뉴 감독 개인으로서는 유럽 3대 클럽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컨퍼런스리그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감독으로 등극했다.

무리뉴는 2022-23시즌에도 유로파리그에 사실상 올인하여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으며 무리뉴의 '실리축구'가 아직도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세비야와의 결승전에서 심판의 석연찮은 오심으로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며 다잡은 트로피를 놓쳤다. 무리뉴의 필승 공식으로 꼽히던 '2년 차 우승 징크스'와 '클럽대항전 결승전 불패' 신화도 깨졌다. 만일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했다면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까지 거머쥘 수도 있었기에 로마와 무리뉴 감독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무리뉴는 최근 성적부진으로 경질설이 돌고 있던 상황에서도 잔류 의지를 내비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결국 로마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자신의 개인 소셜 미디어에 "땀, 피, 눈물, 기쁨, 슬픔, 사랑, 형제, 역사, 마음, 영원"이라고 짧은 글과 로마에서 보낸 시간을 요약한 영상을 게시하며 팬들에게 낭만적인 작별인사를 전했다.

구단 측과 로마에서 지도한 선수들도 무리뉴에게 작별인사를 전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이전 소속팀에서 경질되었을 당시의 냉랭한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리뉴에게 로마 시절은 바록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첼시에서 토트넘까지 계속해서 내리막길만 걷고 있던 감독 커리어에 모처럼 반등의 계기를 만들어준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무리뉴는 로마에서 물러나자마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등 여러 클럽과 대표팀의 감독 후보로 거론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공백기는 그리 길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스페셜 원의 다음 도전 무대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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