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운 재계…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속도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1. 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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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운 재계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속도

올 3월 주총을 앞둔 국내 재계에서도 당혹감이 감돈다. 특히 대다수 국내 대기업은 3, 4세 오너 경영인으로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선대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소유 기반 지배력을 승계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3, 4세 오너 경영인의 지배력 확대 발판이 될 주요 지주사 지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다. HD현대만 봐도 소유 구조 측면에서는 정기선 부회장 지배력이 취약하다. 2023년 3분기 그의 HD현대 지분율은 5.3%에 불과하다.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지분 약 26.6%(1조2774억원)를 넘겨받으려면 대주주 경영권 주식에 적용하는 60% 상속·증여세율을 적용한 7000억~8000억원 규모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단순 배당 등으로 선대 경영인에 버금가는 수준의 지배력을 유지할 승계 재원 마련이 결코 쉽지 않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최성환 사장은 SK네트웍스 지분율이 3.1% 수준이다. 김건호 사장은 삼양홀딩스 지분율이 2.9%에 그친다.

결국 취약한 소유 구조 아래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경영 성적을 스스로 입증하고 ESG 등 지배구조 개선에 실질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가 재계에 던진 메시지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창업자 가문 일원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향후 경영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전략적·재무적 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주주 가치 제고에 힘쓰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다. 한국타이어는 2023년 사상 최대 실적이 예고됐지만, 이번 사태 직전까지 주가는 답보 상태였다. 재계에서는 한국앤컴퍼니를 향한 MBK의 추가 공세가 이어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한편 재계는 지배구조 선진화에 속도를 내는 한편,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MBK 사태를 계기로 오너 일가 경영권 지분을 노린 적대적 M&A 시도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재계 우려다.

대표적인 방어 장치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로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일본 등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에게 주당 10배 안팎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두고 있다. 포이즌필은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가 발생할 때 기존 주주에게만 저가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한다. G7 주요국 중 한국만 도입하지 않았다. 장근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경제·사회적 배경에서 기업 법제가 구축돼왔기에 특정 국가의 법제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신주인수선택권은 비교 대상 국가 중 우리나라만 미도입 상태인 만큼,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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