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경영권 공격 속내는…행동주의 전략 외연 확장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1. 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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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 경영권 공격 속내는

행동주의 전략 외연 확장

그럼에도 MBK 측이 이례적으로 재계 오너 경영권 확보를 시도한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첫째, MBK가 펀드 출자자인 LP(Limited Partners·유한책임투자자) 다각화를 기반으로 PE업계 톱티어(Top-Tier) 지위를 확보한 만큼 더는 국내 대기업 집단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다.

MBK는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바이아웃’ 전략으로 평판을 닦은 뒤 국민연금과 공제회 등 국내 LP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LP를 유치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사모펀드 특성상 정확한 출자자 구성은 알 수 없지만 MBK 주요 LP 대다수가 캐나다연금(CPPIB),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퍼스), 아부다비투자청 등 해외 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지분 확보에 나선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 역시 출자자 절반 이상이 미국 일리노이주 교직원은퇴연금과 콜로라도주 공무원은퇴연금 등 해외 LP로 알려진다.

통상 PE업계에서는 해외 LP를 중심으로 펀드 출자자 다각화를 이루는 것을 선호해왔다. 여기에는 국내와 해외 LP 간 투자 속성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연기금 등 국내 LP는 펀드 조성부터 자금 회수(Exit)까지 평균 5년 안팎 기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PEF는 평균 7~8년 운용된다. PE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자본 시장 역사가 국내와 비교가 안 될 만큼 길어 공적자금 성격의 LP도 모험자본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선호하는 투자처도 구분된다. 국내 LP는 상대적으로 모험자본 성격의 ‘블라인드펀드’보단 ‘프로젝트펀드’ 선호도가 높다는 게 PE업계 대체적인 시각이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대규모 자금 조성과 투자에 나서 모험자본 성격이 짙다.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경영권 공격을 단행한 MBK 펀드 역시 블라인드펀드다. 반면, 프로젝트펀드는 수익이 날 만한 투자 대상을 미리 정한 뒤 투자금을 모은다.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과거 MBK가 주도했던 딜라이브(옛 씨앤앰)가 워크아웃 수준의 채무 재조정을 거치면서 국내 출자자 상당수가 손실을 봤다”며 “PE 역사가 짧은 국내 금융권 정서상 개별 투자 건에서 이런 손실이 발생하면 재투자를 받기 쉽지 않다”고 돌아봤다. 이런 경험이 MBK가 LP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MBK 입장에서는 PE가 보유한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따지지 않고 개별 투자 건 손실을 문제 삼는 국내 금융권 관행에 답답함을 느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둘째, 경영권 지분을 노리는 바이아웃 PEF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주력하는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확보에 나선 MBK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행동주의펀드와 핵심 투자 전략이 다르지 않다.

통상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는 투자 전략 결이 전혀 달랐다. 소수 전문 투자자를 대상으로 펀드 출자자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두 유형 모두 ‘사모펀드’로 범주화할 수 있지만 투자 전략만큼은 명확히 구분됐다.

행동주의는 타깃 회사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차별적인 수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을 뜻한다. 기업 전략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거나 운영의 개선, 효과적인 자산 배분, M&A 시도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압력 행사 등이 대표적인 투자 전략이다. 이런 투자 전략을 기반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행동주의펀드라고 부른다.

자본 시장 역사가 긴 해외에서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는 상호 대립을 빚을 때가 많았다. 행동주의펀드가 소수 지분을 사들인 후 이사회 진입을 시도하면 해당 기업 오너가 PE를 ‘백기사’로 불러 경영 개입을 차단하는 식이다.

최근 수년간 이런 대립 구도는 상당 부분 무너지고 지배구조 개선 등 행동주의 진영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맞부딪히게 됐다는 게 금융권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권에서는 행동주의펀드가 경영권 지분을 통째로 인수해 기업가치 개선을 시도하거나, 바이아웃 PEF가 이른바 ‘토홀드(Toehold)’ 지분(5% 공개 보고 임계값 미만 지분)을 인수한 뒤 이사회 진입을 노리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외신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공격으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미국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은 2020년 사모펀드 베리타스캐피탈과 함께 미국 시스템 통합 업체 큐빅코프 경영권 지분을 노렸다. 엘리엇은 2022년에는 사모펀드 비스타에쿼티파트너스와 손잡고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시트릭스를 165억달러에 인수했다. 엘리엇은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사모펀드지만 최근 수년간 바이아웃 거래에 심심찮게 이름을 올린다. 반대로, 바이아웃 PEF 선두 주자 KKR이나 TPG가 상장사 소수 지분을 매입한 뒤 이사회에 참여하고 주주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투자 전략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바이아웃 PEF고 행동주의펀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학계와 금융권에서는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의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사모펀드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이어가면서 시장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바닥났다. 이에 투자금 모집(Fundraising)에 차질을 빚은 글로벌 PE가 기존 바이아웃펀드로는 활로를 모색하기 힘들자 행동주의 전선에 뛰어들어 전략 다각화와 외연 확장을 노렸다는 진단이다.

둘째, 사모펀드 주요 출자자인 해외 LP 사이에서 ESG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해외 연기금과 국부펀드는 대부분 ESG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해 투자 결정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 도입했다. 투자 전략 ‘변방’ 취급을 받던 ESG가 이제 투자 성과를 위한 필수 전략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국제 기관 투자자 협의회인 ILPA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한 LP의 93%가 투자처에 부정적인 ESG 이슈가 있을 경우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MBK 역시 해외 중심 출자자 다양화를 지렛대 삼아 행동주의로 외연 확장에 나섰고 첫 타깃으로 한국앤컴퍼니가 물망에 올랐다는 진단이다. 이런 맥락에 비춰, 공개매수에 실패했지만 MBK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손해 본 것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애당초 최소 물량에 미달하면 주식을 사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을 가져왔다면 원매자(매수자) 등장 시 조 고문과 조희원 씨 지분을 함께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 조항도 확보했던 터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사장은 “MBK는 이번 공개매수 추진으로 PEF 영역 확장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확보한 것”이라며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분쟁 불씨가 살아 있는 대기업 집단에서는 MBK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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