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보고 한국현대사가 궁금해졌다면, 이 영화 [홍종선의 명장면⑤]

홍종선 2024. 1. 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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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위에 김대중’, 위인전 아닌 오늘을 보게 하는 역사영화
대중을 위한 경제·지자체가 민주주의 뿌리라고 생각했던 정치인
민주주의 실현해내는 건 ‘국민’임을 알았던 진정한 애민의 리더
무엇이 될 것인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목숨 걸었던 사람
생전의 김대중 선생 ⓒ이하 명필름 제공

1282만 관객의 선택을 받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난 뒤 새로이 혹은 다시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두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감독 민환기, 제작 명필름·시네마6411, 배급 명필름)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길위에 김대중’의 실 관람객 평점(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은 9.75, ‘서울의 봄’의 9.54보다 높다.

“한국 현대사를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통하는 역사 다큐.” (tai5****)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제대로 알게 되어 인상 깊었어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 (blac****)

“중2, 고1 자녀들과 보고 왔습니다. ‘서울의 봄’ 못지않게 감동과 울분을 느끼게 하는 명작입니다. 아이들도 공감하며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었어요. 부모님들 모시고 재관람해야겠어요.” (devi****)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바친 대통령. 부정선거, 자택 구금, 수감, 사형선고, 망명, 의문의 교통사고 등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40년 간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한 사람. 사는 게 힘들 때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동초 같은 삶을 떠올리게 된다. 망명 시절 미국 여러 매체에 초청돼 강연을 이어나가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외롭고 고단했다는 말이 가슴 아팠다.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 지역감정 씌우기, 공산당 프레임 등에 굴하지 않고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강인한 인생역정에 한없이 빚진 마음이 든다.” (mj_5****)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감동스럽고 가슴이 먹먹해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이토록 목숨 받쳐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투쟁해서 이룬 민주주의, 잠깐의 방심에도 역사의 반복이 시작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 꼭 봐야 할 영화네요. 하늘이 대한민국을 위해 내려 준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yki****)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자유는 거저 공짜로 주어지지 않음’을 일깨우는 영화. 젊은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 많이 봤으면 좋겠다.” (kyou****)

“한국 현대정치사 교육,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 부끄러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psyc****)

청년사업가에서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 ⓒ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분들의 관람평을 읽곤 한다. 어떻게 기사를 써도 평들을 합한 것보다 잘 쓸 자신이 없어지면서도 찾아보는 건 그 안에 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서 육성으로 정치인이자 철학자 김대중이 말씀하듯, 대중에게는 약점과 한계가 있으나 결국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힘은 국민에게 있고 그 이상의 좋은 방법이 없듯이, 모든 관람객의 선택이 언제나 맞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결국 만인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분별해내는 눈은 관객 대중에게 있다.

“민중은 일관해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으며 우리가 살아남은 것도 그들의 마음속에 올바른 것과 의로운 것에의 소망의 불이 가냘프게나마 꺼지지 않고 타올라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중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능력의 한계를 압니다. 그러나 다른 어떠한 방법도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참여의 길’ 이상의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길위에 김대중’이김대중의 재발견에 그치는 영화였다면, 목포에서도 뱃길로 3시간 떨어진 섬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저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임금이 될 것이다’라는 무속인의 예언이 이뤄졌다는 식의 위인전이었다면 소개하지도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국민을 아끼고 믿었던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끝난다. 영화는 처한 환경에 속박되지 않고 천진난만한 꿈을 꾸던 영특한 아이가 ‘무엇이 되었다’를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가를 얘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기업과 재벌, 일부 잘사는 소수만을 위한 ‘특권경제’가 아니라 실제로 고생하며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힘쓴 모두가 잘사는 중소기업 위주의 ‘대중경제’가 중요하다는 것. ‘지방자치제’를 통해 국민이 직접 자기 지역에서 일을 봐 봐야 민주주의가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고 그래야 ‘독재’가 자라날 수 없다는 것, 되레 소수를 위한 특권경제와 독재 위에서 공산당이 피어난다는 고인(故人)의 생전 역설이 새삼 크게 들린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 진정 목숨을 걸고 이뤄내려 했던 것이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실현하게 하는 ‘민주주의’였다는 사실 앞에서 숙연해진다.

김대중이 연설하면 5만 명, 100만 명이 몰렸다. 귀에 쏙쏙 현안을 짚어줄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어 인기가 높았다. ⓒ

‘길위에 김대중’은 다큐멘터리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우리 현대사에서 펼쳐졌음이 다시금 확인된다. 영화 ‘서울의 봄’의 상황이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서 시작돼 전두환의 군부독재로 이어진 ‘궤’를 한 번에 꿰뚫어 보게 한다.

특히 영화 ‘서울의 봄’ 마지막 장면 직후의 이야기가 시선을 붙든다. 이태신(정우성)이 바리케이트를 넘어 전두광(황정민 분)에게로 갈 때, 서울을 이미 손아귀에 넣은 공수부대가 거리의 시민들을 귀가시키기보다 무력으로 탄압했던 것처럼, 광주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시민을 상대로 대대적 학살이 이뤄졌다. 당시 신군부에 연행돼 이미 고문을 받고 있던 김대중은 5·18 민주화 항쟁 발발 40여 일 뒤인 6월 28일에서야 이 사실을 처음 알았지만, 주동자로 몰려 반국가단체 수괴가 되어 육군본부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민주주의는 돌아온다. 그때 여러분들이 오늘 우리한테 이런 일을 저지른 분들에 대해서 보복하지 마라. 보복하지 말고 민주주의만 확고히 해라.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한두 번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아니고, 한두 번 쫓겨나고 납치되고 갇히고 고문당한 게 아님에도, 군부정권에 의해 실제로 용금호 배 밑바닥에 실려 바다에 수장될 위기에 처한 바 있었음에도 ‘관용’을 말하다니.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철학에 감탄하기보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게 우리 역사에, 아니 우리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에 탄복한다.

간절한 그의 기도는 오늘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를 지키는 건 우리의 몫이다. ⓒ

도대체 민주주의가 뭐길래. 바로 우리 옆에 있고, 알 것만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민주주의가 똑바로 서지 못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제라는 거울을 통해 오늘을 보고,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다면 만나보자, ‘길위에 김대중’.

연설하고, 차에서 먹고 자고, 다시 연설하며 하루 열 번에서 열한 번 국민을 직접 찾아가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던 ‘길 위의 정치인’. 777일 미국 망명 시절, 낯선 땅에서 불러주는 이 없어도 방방곡곡 찾아다니고 나중에는 무조건 그를 찾는 인물이 되도록 193회의 강연과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군부독재 상황을 알리고 민주화를 앞당겼던 ‘길 위에 책략가’.

글로는 1000분의 1도 담기지 않는, 촘촘하고도 구성지게 재미있는 영화가 블록버스터에 밀리지 않도록 극장에서 지키는 힘은 관객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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