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폭 출신, 지시 따라라” 기초수급자 죽음 내몬 40대 구속 송치
이른바 ‘가평계곡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경남 거제에서도 발생했다.
17일 경남 창원해양경찰서에 따르면 2023년 10월 11일 거제시 옥포항 수변공원 앞 해상에서 5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창원해경은 남성 A 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바다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하던 중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40대 남성 B 씨와 50대 남성 C 씨의 행동이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했다.
광범위한 탐문을 펼치던 창원해경은 B 씨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한 혐의가 있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수사팀의 인원을 보강해 전담반을 편성했다.
수사 결과 숨진 A 씨와 C 씨는 오랜시간 B 씨에게 소위 ‘가스라이팅’이라 불리는 심리적 지배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B 씨는 2018년 고시원에서 알게 된 두 사람에게 자신이 과거에 조직폭력배로 활동했다고 속이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폭력배를 동원해 보복하겠다며 폭행했다.
A 씨와 C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정부로부터 매달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B 씨는 2021년부터 경제 사정이 어렵다며 C 씨에게 현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유흥비 변제를 위해 2023년 4월께 두 사람의 수급비가 입금되는 카드를 빼앗아 13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인출해 가로챘다.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일용직 노동을 시켜 그 수입을 자신의 모친 계좌로 송금하도록 지시해 230만원가량을 강탈했다.
B 씨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A 씨와 C 씨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고 평소 일상을 보고 받기도 했다.
2023년 6월께는 이들에게 도보로 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17㎞ 거리를 걷게 하면서 도로명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에게 전송하라고 지시했다.
지속해서 두 사람을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 나가지 못하게 위력을 행사했고 신체적 자유를 침해한 상태로 술을 마시게 했다.
“서열을 가려라”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실신할 때까지 싸움을 붙이는 등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평소 폭행을 자주 당한 데다 “안 하면 죽는다”고 말하는 B 씨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 싸웠고 이 과정에서 C 씨가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 실신해 119구급대에 실려 가기도 했다.
B 씨의 범행은 A 씨가 숨지기 하루 전에도 이뤄졌다.
2023년 10월 10일 거제시 옥포동의 한 식당과 인근 모텔로 장소를 옮겨가며 두 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후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은 B 씨와 함께 사건 당일인 11일 오후 2시께까지 쉬지 않고 소주 22병가량을 나눠 마신 상태였다.
B 씨는 옥포수변공원 계단에 앉은 채 바다를 바라보다 “둘이 수영해라”고 지시했다.
몇 년간 이어진 B 씨의 폭행과 협박 등으로 두려움에 떨며 육체적, 정신적 항거 불능 상태에 있었던 두 사람은 그 말에 따랐다.
A 씨는 바로 옷을 벗고 난간을 넘어갔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대던 C 씨도 “안 들어가고 뭐 하냐”는 B 씨의 재촉에 난간을 넘어 바다에 뛰어들었다.
먼저 바다에 들어간 A 씨는 결국 물 속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경찰 조사에서 C 씨는 “언제 맞을지 모르니까,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두드려 맞으니까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했다.
창원해경은 B 씨를 과실치사, 중감금치사, 강요, 사기 등의 혐의로 2023년 12월 26일 구속 송치했다.
사건을 담당한 검찰 측도 B 씨가 심리적 지배와 억압 관계를 형성해 피해자를 숨지게 했다고 보고 지난 16일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해경이 입수한 모텔과 식당, 수변공원 폐쇄회로(CC)TV 화면에는 B 씨에게 식당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던 순간, 수변공원 난간을 넘어가는 A 씨의 마지막 모습 등이 담겼다.
해경은 B 씨의 지속적인 폭행, 가혹행위 등으로 피해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며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어 비정상적인 지시에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생존한 C 씨는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버티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을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숨진 A 씨 또한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무게가 18㎏가량 빠지는 등 아픈 몸을 이끌고 막노동을 강요받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마저 빼앗긴 상태였다고 전했다.
창원해경 관계자는 “의지할 곳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벼랑 끝에 몰아넣은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보복 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고 피해자의 빠른 일상 회복을 위해 생계비, 의료비 등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수사 활동을 강화하고 해양에서의 강력범죄 등 민생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덧붙였다.
영남취재본부 이세령 기자 rye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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