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대륙확장의 꿈, 현대차 中 충칭공장의 야속한 6년
충칭공장 가동된 2017년, 사드보복 사태로 판매량 급감
6년간 제역할 못하다 지난해 말 3000억원에 매각
대체시장 개척, 미국‧유럽‧인도 등에서 선전으로 시장 리더십은 강화
“지역이 크기 때문에 중국 서부·내륙지역에 큰 관심이 있다.”
2013년 6월 27일.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출국하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은 중국에서의 사업 확장 계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합작사 베이징현대를 통해 중국에 3개의 공장(베이징 1~3공장)만 운영하던 현대자동차는 중국에서의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수도권을 비롯한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이 레드오션화 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서부대개발사업을 바탕으로 경제규모와 소비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서부내륙지역은 현대차와 같은 외자기업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중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현대차는 당시 연산 30만대 규모의 네 번째 공장을 중국에 건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고, 입지로는 중국 최대 인구를 가진 직할시인 서부내륙 중심 도시 충칭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듬해인 2014년 3월 정몽구 회장이 충칭을 방문하면서 현대차 중국 4공장이 충칭에 세워질 가능성은 더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허베이성(河北省) 지방관 출신인 시진핑 주석이 그해 ‘징진지(京津冀) 협동발전’에 힘을 실어주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톈진(天津), 허베이성을 포함한 중국 수도권 지역을 의미하는 ‘징진지’ 지역간 상호 연계 발전을 국가 중대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후 허베이성 측에서도 현대차 측에 강하게 어필하면서 결국 2016년 10월 준공된 현대차의 중국 4공장은 허베이성 창저우(滄州)시에 자리 잡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충칭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기가 다소 늦어졌을 뿐 충칭 생산기지 구축 계획을 계속해서 추진했고, 결국 2017년 중국 내 다섯 번째 공장인 충칭공장 건설을 완료해 그해 7월 생산기념식을 열었다.
문제는 시기였다. 2016년 7월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 내 반한감정 확산과 중국 정부의 ‘무언의 보복’이 2017년부터 본격화되면서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 성장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충칭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부터 합작사 베이징현대의 납품대금 차질 문제로 기존 베이징공장과 창저우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일까지 생겼다.
2016년 114만2000대에 달했던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2017년 78만5000대로 3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기아의 판매량은 65만대에서 36만대로 반토막 났다.
이후에도 현대차‧기아의 중국 판매량은 추락을 거듭했다. 중국 현지 완성차 업체들의 약진과 전기차 전환,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반등을 모색할 틈조차 없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중국 내 점유율은 합쳐서 1.9%에 불과했다.
결국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한 현대차는 지난해 말 충칭 공장을 ‘위푸공업단지건설유한공사’에 16억2000만위안(약 3000억원)에 매각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을 기회삼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리려 했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중국 사업 전략의 상징과도 같은 충칭공장이 현대차의 품을 떠나게 된 것이다.
충칭공장은 정의선 부회장에게도 의미가 큰 곳이다. 부회장이던 2017년 7월 충칭공장의 생산기념식을 부친을 대신해 직접 챙겼다.
완공 이후 6년여간 제대로 활약도 못하고 팔려나간 충칭공장과 중국 사업 위축은 현대차의 아픈 역사로 남았지만, 일찌감치 대체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정의선 시대의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리더십이 오히려 더 강화됐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해 나가는 한편, 아시아권에서는 인도를 중심으로 동남아 지역에서도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도 성공적으로 대처하며 2022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글로벌 완성차 기업 3위의 자리에 올랐다.
AAM(미래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 수소 등 신사업 분야에 그룹의 역량 절반을 쏟아 붓는 가운데, 완성차 부문에서 레드오션화된 중국 시장 의존도를 일찌감치 낮춘 게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17년 사드 보복이라는 돌발 이슈가 있긴 했지만 어차피 그 무렵부터 중국 시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로컬 기업들의 빠른 성장으로 외자 기업들이 발붙이기 힘든 구조로 바뀌고 있었다”면서 “중국 시장에 미련을 두기 보다는 남은 설비들을 활용해 투자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도록 수익성 위주의 운영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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