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달러 육박했던 엔화 예금, 엔저 주춤하자 '감소세' 전환
'100엔당 800원대' 엔저(低)를 타고 빠르게 늘어났던 엔화 예금이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엔저가 주춤하자 투자자들이 '사자' 대신 '팔자'로 환차익 실현에 나선 영향이다. 반면 달러화 예금은 수출 증가 덕에 늘었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21억2000만 달러 증가한 1038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 기업,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 진출 외국 기업 등이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외화 예금을 의미한다. 이러한 외화예금은 석 달째 늘어나는 양상이다. 기업 예금은 한 달 새 20억2000만 달러 늘었고, 개인 예금은 1억 달러 증가했다.
통화별로 보면 달러화 예금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지난달 잔액은 한 달 전보다 19억6000만 달러 늘어난 857억9000만 달러였다. 한은은 "수출 증가, 개인의 해외 증권 순매도 등으로 달러화 예금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업들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은 호조를 보인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5% 증가하면서 3개월 연속 '플러스'를 이어갔다. 수출액도 576억 달러로 2022년 7월(602억 달러) 이후 17개월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반면 지난달 엔화 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2억2000만 달러 줄어든 97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전까지 나타났던 엔화 예금의 급격한 증가세와는 다른 양상이다. 앞서 엔화 대비 원화가치(100엔당)는 지난해 4월 1000원대에서 11월 850원대까지 올랐다. 이러한 환율이 나타난 건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이어지자 개인 투자자들도 엔화 예금으로 몰렸다. 지난해 9~11월 석달간 꾸준한 오름세를 나타냈는데, 특히 11월엔 역대 최대폭인 13억1000만 달러가 늘었다. 예금 잔액도 사상 최고치인 99억2000만 달러로 100억 달러 선을 목전에 뒀다.
하지만 환율이 움직이자 엔화 예금 규모도 넉달 만에 뒷걸음질 쳤다. 한은은 "엔화 절상에 따른 차익 실현 등으로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중심으로 엔화 예금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초부터 엔화 대비 원화값(100엔당)이 900원대로 다시 떨어지고,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다. 일본은행(BOJ)이 통화 정책을 긴축적으로 전환할 거란 시장 기대 속에 엔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이다. 다만 엔화 예금 잔액은 2022년 12월(66억1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1년 새 47% 늘어났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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