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M&A, 이재용 '운신폭'에 달렸다
대형 M&A 無·회장 취임에도 뚜렷한 '뉴삼성' 없어
26일 재판 결과에 따라 이재용식 '삼성' 정상화 전망
이재용 회장 주도의 삼성 '신경영'이 올해에는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재계 안팎에서는 오랜 사법 리스크로 추진 동력이 약했던 '뉴삼성'·M&A(인수합병)이 머지 않아 본격화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핵심 열쇠는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해소에 있다.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1심 선고에서 실형을 면하면 이 회장이 '뉴삼성'을 위한 경영 전략을 내놓는 동시에, 삼성의 신성장동력에도 보다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연말·연초 국내에 계속 머물며 주로 삼성 기술 인재들을 챙겼다. 삼성리서치를 방문해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 동향을 점검하고, 서초사옥에서는 명장 간담회를 가진 것이 대표적이다.
1년 전인 2022년 12월에는 삼성물산이 참여하는 UAE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를 방문하고, 베트남 삼성R&D센터 준공식을 찾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던 터라 이번에도 연말·연초 해외 일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이같은 행보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1심 선고기일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심 선고일은 오는 26일로, 2020년 9월 공소장이 접수된 지 3년 4개월 만에 일단락을 짓게 된다. 통상 결심 이후 1~2달 뒤 선고가 이뤄지지만, 이번 사안은 수사 기록만 19만쪽에 달하는 등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 연초로 넘어갔다.
앞서 검찰은 11월 결심 공판에서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이 받는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삼성은 이 같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줄곧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고 반박해왔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져 문제가 없으며, 삼성물산이 당시 3조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합병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길었던 양측의 공방 이상으로 이 회장은 재판으로 해외 출장에 제약을 받는 등 장기간 경영 활동에 발목을 잡혀 왔다.
실제 그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만 9년째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작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지만 이후에도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에 매주 출석해왔다.
이렇듯 총수의 운신의 폭이 좁다 보니 삼성은 2022년 말 이재용 회장 체제 이후에도 '뉴삼성' 로드맵을 내놓지 못했다. 그 사이 반도체는 업황 부진에 고꾸라졌고, 제2 반도체가 될 신성장동력은 나오지 않았다. 작년은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기존 사업 덕분에 지탱이 가능했다.
그런 와중에 인텔은 지난해 삼성전자를 꺾고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에 올랐고, TSMC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가리지 않고 투자를 늘리는 무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쟁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자 '뉴삼성'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 경영진들은 하만 이후 멈춘 대형 인수·합병(M&A)이 곧 재개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업계 반응은 뜨듯미지근하기만 하다. 수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총수의 과감하고도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데, 이 회장이 현재 제대로 군림하기도, 통치하기도 힘드니 '삼성 위기론'으로 번지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AI 등 투자 결정이 제 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재계는 우려한다.
사안이 워낙 중대한 터라 재판 판결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재계는 그간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각 계열사 권한을 강화하는 등 준법경영, 책임경영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점 등을 고려하면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물론 결과를 놓고 항소·상고가 이어지는 등 사법 리스크는 당분간 지속될 수는 있지만 1심 결과가 크게 불리하지만 않는다면 이 회장의 경영활동도 어느 정도 정상화되고 삼성의 경영 시계 역시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뉴삼성' 큰 줄기는 이 회장이 결심공판에서 가진 최후진술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사업 선택과 집중, 신사업, 신기술 투자, M&A를 통한 보완, 지배구조 투명화" 등을 언급하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유가 미래 대비 차원임을 주장했다. 회사의 존속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이 회장의 거취에 따라 향후 구체화될 전망이다.
결국 이달 선고 향방에 따라 삼성의 '신경영' 선언 및 대형 M&A 로드맵도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히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전략을 가늠하게 할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올해가 이재용식 '뉴삼성'을 보게 될 원년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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