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세계탁구선수권 D-30…현정화의 감격과 제언
“100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선수권입니다. 그 뜻깊은 대회가 고향 부산에서 열리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어요.”
탁구계 최대 축제인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다음달 16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다.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선수권이다.
1926년 출범한 세계선수권은 그동안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아시아의 인도와 일본, 중국, 심지어 북한 평양에서도 개최됐지만, 한국과는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다. 2018년 5월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총회에서 단독 후보로 나선 부산은 2020년 세계선수권을 유치했다. 그러나 대회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뒤 몇 차례 연기되다가 2021년 11월 열린 미국 휴스턴 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올해 2월 개최가 결정됐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한국 탁구 도입 100주년과 맞물려 의미가 더욱 뜻깊다. 대한탁구협회는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핑퐁경기대회를 한국 탁구의 효시로 본다. 이전에도 탁구의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이 대회를 기점으로 탁구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4년은 그 역사가 뿌리 내린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선수권의 산증인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을 찾은 이번 세계선수권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이가 있다. 바로 현정화(55) 한국마사회 감독이다. 한국 탁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긴 현정화는 ‘세계선수권의 선수’라고 불린다. 1987년 뉴델리 대회에서 ‘영원한 단짝’ 양영자(60)와 합작한 여자복식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 혼합복식 우승,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1991년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 제패, 1993년 예테보리 대회 여자단식 금메달까지 세계선수권의 모든 종목을 석권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탁구의 아이콘이 된 뒤 한평생 같은 길을 걸어온 현정화는 고향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4일 인천 청라의 한국마사회 탁구단 사무실에서 만난 현 위원장은 “언제 대회가 열리나 했는데 어느덧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셔서 큰 문제없이 준비되고 있다”면서 “내가 전문적인 행정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이 많이 알려진 탁구인으로서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도움을 구할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협조를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가 레전드와 지도자, 집행위원장 사이에서 방황할 때면, 현정화는 “오늘만큼은 세계선수권 이야기를 더 하자”며 대화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다음은 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조직위원회가 가장 바쁠 시기일 텐데.
“요새도 일주일에 한 번은 부산으로 내려간다.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매주 회의가 열린다.”
-어떤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22년 처음 조직위원회가 만들어진 뒤 대회를 위해선 약 15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적지 않은 돈이라 조직위원회 직원들의 발품이 꼭 필요했다. 나 역시 전문적인 행정가는 아니지만 얼굴이 많이 알려진 탁구인으로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도움을 구할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협조를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년 조금 더 된 때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부위원장 제안을 받았는데 조직위원회가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조직위원회로부터 같이 일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선수권 아닌가. 다른 대회면 몰라도 세계선수권은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계산해보니 금메달 4개를 포함해 모두 10개의 메달을 땄더라. 탁구인 현정화를 만든 무대가 바로 세계선수권이다.”
-그 세계선수권이 고향인 부산에서 열린다.
“올해가 한국 탁구 도입 100주년이다. 세계선수권 역사도 100년 가까이 됐고. 그런데 한국에선 대회가 열린 적이 없었다. 부산 사람으로서, 한국 탁구인으로서 마음이 참 아팠는데 드디어 세계선수권이 열리게 됐다. 그것도 고향인 부산에서 말이다. 얼마나 감격스럽겠나.”
-탁구 시작도 부산에서였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교실 옆이 탁구부 연습 공간이었다. 매일 거기를 지나갔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너 탁구 한 번 해볼래?’라고 물어보셨다. 호기심 삼아 라켓을 처음 잡아봤는데 재미가 있더라. 얼마 뒤 탁구부에서 남녀 합쳐 50명을 신입부원으로 뽑았다. 그때 정식 선수가 됐다. 아버지(故 현진호)께서 유명한 탁구선수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어릴 때는 어떤 선수였나.
“나름 선생님의 지도를 잘 소화하는 아이였다. 똘똘하다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그래서 재미가 붙었다. 경기에서도 자주 이겼고.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탁구채를 놓지 못했다. 참, 첫 번째 우승을 하고 계성여고 교장선생님께서 사주신 광어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수 생활을 이야기할 때 세계선수권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기억 남는 대회가 있다면.
“많은 분들께선 리분희(56) 언니와 함께 뛴 1991년 대회를 생각하실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날 이후 보지 못한 리분희 언니는 여전히 그립다. 개인적으로 하나를 더 꼽자면 1993년 마지막 대회를 이야기하고 싶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마지막 목표였던 여자단식 금메달을 딴 대회였는데 사실 그때가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남들이 화려하게 기억할 때 떠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그 시절은 후배들을 위해 선배가 빨리 물러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나를 만류하던 사람이 별로 없더라. 여자단식 우승으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마음을 안고 은퇴를 결심했고, 이듬해 3월 MBC 최강전을 통해 은퇴했다. 그때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30년이 흘러 국내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린다. 가장 궁금한 점은 역시 한국 선수단의 성적이다.
“이번 대회는 남녀 단체전으로 나뉜다. 한국은 남녀 대표팀 모두 4강은 갈 수 있는 전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유럽의 강세가 걱정인데 독일과 스웨덴, 루마니아 등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조별리그든 토너먼트든 유럽 국가와의 맞대결이 중요하다. 또, 조별리그 1위를 해야 4강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대 강국 중국은 어떤가.
“지난해 평창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과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보니 역시 기술력이 잘 정립돼 있더라. 만약 중국을 만나게 된다면 결국 확실한 무기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플레이해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평소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이유가 있을까.
“국가대표는 어찌 됐든 ‘잘 해야’ 하는 위치다.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다. 후배들이 올라올 때까지 다그치는 것도 선배의 책무라고 본다. 국가대표 계보를 이어간다는 것이 그렇다. 나만의 탁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요새 그런 소리를 하면 소위 ‘꼰대’라고 욕을 먹는 세상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탁구만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 스포츠 종목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우리 때는 활성화됐던 몇몇 종목이 지금은 유명무실해져 간다.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탁구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래서 한국 탁구의 다음 100년을 가늠할 이번 세계선수권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대회의 흥행도 중요할 텐데.
“단체전은 단체전만의 묘미가 있다. 한국이 안방에서 열리는 국가대항전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선 많은 팬들의 응원이 절실하다. 5000석을 가득 메워주셔야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이번 대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세계의 많은 선수들이 부산의 매력을 마음껏 느끼길 바란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뒤 부산의 즐길 거리를 만끽했으면 좋겠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한국이 세계선수권 준비를 참 잘했구나’라는 평가를 들었으면 한다.”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요
일정 : 2024년 2월 16~25일
장소 :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
종목 : 남자 단체전, 여자 단체전
규모 : 남녀 각 40개국 2000여명
한국 선수 : 장우진·임종훈·이상수·박규현·안재현(이상 남자), 신유빈·전지희·이시온·윤효빈·이은혜(이상 여자)
마스코트 : 초피·루피(갈매기 형상화)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이름이 뭐라고!""이길여!"…92세 총장, 그날 왜 말춤 췄나 | 중앙일보
- "이선균 산산조각 났다, 일종의 청교도주의" 프랑스 언론의 일침 | 중앙일보
- 뉴진스 민지, 칼국수 발언 뭐길래…결국 사과문까지 올렸다 | 중앙일보
- 누군 월 95만원, 누군 41만원…연금액 가른 건 바로 이 '마법' | 중앙일보
- 의사 자식들은 공부 잘할까…쌍둥이가 알려준 'IQ 진실' [hello! Parents] | 중앙일보
- 이정후 "내 동생이랑 연애? 왜?"…MLB까지 소문난 '바람의 가문' | 중앙일보
- 수영복 화보 찍던 베트남 모델, 누운채 오토바이 타다 감옥갈 판 | 중앙일보
- 절박·찐팬·조직력 '3박자'…돌아온 트럼프, 더 세졌다 | 중앙일보
- 밸리댄스 가르치다, 장례 가르친다…일자리 빼앗는 저출산 공포 [저출산이 뒤바꾼 대한민국] |
- "비장의 무기" 조삼달 다녀간 그곳…제주 '사진 명당' 어디 [GO로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