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난임환자 9만명 “죄인 된 기분”

수치심에 비용 부담까지 이중고... 제도적 지원책은 미미해

(출처=연합뉴스)

남성 난임환자가 늘고 있지만 여성 중심의 난임 환자 지원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논문 ‘난임 시술을 받은 남성의 심리사회적 어려움’(저자 문은미, 김민아)이 공개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 약 25만2000명 중 남성 난임환자가 전체의 35.4%로 9만여 명에 달했다. 난임은 12개월 동안 피임 도구 없이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며 임신을 시도함에도 임신에 실패하는 경우를 말한다.

연구진이 남성 난임 환자의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 난임 시술을 받은 33~43세의 기혼 남성 8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난임 진단을 받은 이후 느낀 복합적인 감정, 가족들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난임 시술 중 배우자와의 관계 어려움, 사회적 관계에서 난임 시술 공개에 따른 스트레스와 부담, 난임 시술 과정에서 마주한 사회적 지지 체계 부족 등을 공통점으로 느꼈다고 응답했다.

남성 참여자들은 난임 선고를 받고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답변했다. 정상 정자 부족으로 난임 판정을 받은 참여자 A씨(35)는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며 “왜 내가 이렇게 된 건지 자기 자신을 많이 탓했고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난임 사실을 공개한 이후 가족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도 증언했다. A씨는 “어머니가 아기 때문에 삼신 제사를 지낸 적도 있다”며 “부모님이 아내를 유명한 한의원에 데려가 보약을 지어준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아기 잘 들어서는 한약이었다”고 토로했다.

난임 시술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난임 시술 급여 중 남성을 대상으로 한 급여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 등이 있지만, 추가 발생 비용이 많아 시술차수가 지속될 때마다 적금을 깨거나 카드 할부로 병원비용을 결제했다는 등의 사례가 제시됐다.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참여자 B씨(33)는 “지원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감이 들었다”며 “고정적인 페이가 많지 않아 솔직히 시험관 수술도 부담이 된다. 금전적인 쪼들림에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온다”고 응답했다.

시술을 위한 잦은 병원 방문으로 직장에 난임 사실을 공개할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와 부담을 느꼈다는 의견도 있었다. B씨는 “처음 한두 번 정도는 괜찮은데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나가니까 동료들에게 말을 안 할 수 없었다”며 “간혹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출장 등이 잡혀 있는 경우 휴가를 쓴다고 말하기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난임 남성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난임 시술을 받는 남성들의 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을 완화하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지 서비스가 마련되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