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연기한 정우성 “마음에도 소리가 있다” [쿠키인터뷰]

이은호 2024. 1. 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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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 속 배우 정우성. 스튜디오지니, 스튜디오앤뉴

배우 정우성은 1995년 방영된 일본 TBS 드라마를 보다가 “목소리가 가슴을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청각장애인 주인공의 속마음이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장면에서다. 그는 “마음에도 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은 온갖 소리가 쏟아질 때였다. 소셜미디어가 확산해 누구나 확성기를 쥐게 됐다. “‘최고’ 같은 좋은 수식어가 난무하는데, 정작 그 소리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회의하던 그는 자신을 찌른 드라마의 판권을 샀다. 16일 종영한 지니TV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날 마지막 회 방영을 몇 시간 앞두고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났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천만(1000만) 배우’ 타이틀을 가진 그는 의외로 차분했다. 정우성은 “서로 침묵하며 바라볼 기회를 상실해간다고 느껴 깊이 사유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던 차에 원작을 봤다”며 “(판권을 산 후) 한국에서 제작하려니 방송사 쪽에서 ‘3화쯤 주인공 목소리를 트이게 하면 어떠냐’고 물어왔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돌아봤다.

정우성이 맡은 차진우는 7세 때 청력을 잃은 화가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 지망생 정모은(신현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은 큰 사건 없이도 종종 삐걱댄다. “사건이 더 많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상대의 감정에 내가 부합하지 못해 생기는 모든 일이 사건이자 갈등이잖아요.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그 속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보여줘요. 그 점을 잊거나 훼손하지 않으려 했어요.” 진우가 처음으로 소리 내 모은을 부르는 장면은 즉석에서 나왔다. “진우가 모은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을 어느 타이밍에 넣을까 고민했어요. 리허설 중 ‘지금이다’ 싶었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불러 다들 놀랐대요.”

정우성. 스튜디오지니, 스튜디오앤뉴
모은을 연기하며 수어를 익힌 배우 신현빈. 스튜디오지니, 스튜디오앤뉴

과거에도 드라마에 수어가 등장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MBC ‘엄마야 누나야’(2000)는 등장인물이 수어를 쓸 때 해당 배우 목소리를 입혔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목소리 대신 자막을 쓴다. 드라마는 대체로 적막해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한다. 정우성은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화단 속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 흐트러지는 소리…. 이런 것들이 들려 좋았다”고 했다. 시청자 반응 중엔 “이 작품 덕에 조용히 아름다운 것들을 관찰하게 됐다”(IMDb)는 호평도 있다.

고요를 향한 정우성의 고집은 결국 통했다. 지난해 방영하기 시작한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TV·영화 평점 사이트 IMDb에서 평점 9.1점을 받았다. 작품이 디즈니+를 타고 해외에도 공개된 덕에 미국, 인도, 튀르키예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시청자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이 만든 최고의 클래식 멜로”라고 찬사를 보냈다. 한국 시청률은 1~2%로 높지 않지만, 정우성은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소비가 아닌 소유를 위한 작품”이라고 했다. 작품을 선보인 지니TV는 지난해에도 자폐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돌풍을 일으켰다.

듣기는 어쩌면 말하기보다 어려운 일. 좋은 듣기는 상대를 단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한다. 정우성은 “한 사람의 인생은 응축하거나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뭐가 맞고 그른지, 뭐가 좋고 싫은지를 이분법으로 선택하게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작품”이라고 짚었다. 상대를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넓고 복잡한 세계로 들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 캐릭터에게도 그렇다. 시청자는 진우의 수어와 눈빛과 표정을 읽으며 그의 세계를 탐험한다. 누군가를 이해할 폭도 그만큼 넓어진다. 정우성은 “인간 정우성의 관점이 캐릭터를 설계하는 데 영향을 줄 순 있다. 다만 문제의식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만으론 작품을 대할 순 없다”며 “그림이든 이야기든 음악이든 작품은 사고를 확장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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