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었기에 끝까지 살아남다
[임태희 기자]
장자의 '소요유' 편을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를 누리는 나무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나무의 일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쓸모가 없다는 것보다 더 나은 최선은 없어 보인다.
나무는 결코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는 형상이었기에 잘난 나무들이 먼저 베여 나갈 동안에도 목수의 도끼에 찍혀 쓰러질 염려가 없었다. 땔감으로 쓰기에도 변변치 않은 성질을 타고나 드넓은 초원에서 홀로 끝끝내 살아남는다.
이렇듯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데 성공한 나무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애쓰다가 몸과 마음의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참 많지 않은가.
▲ <장자 강의> 전호근 지음 |
ⓒ 임태희 |
하지만 우리는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더 귀한 사람이 된다고 믿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곤 한다. 성공하고 싶은 열망에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스스로 주입시키며 휴식을 반납하기도 하고 성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숭고한 것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낙오하지 않기 위해, 승자의 편에 서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번아웃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타인에겐 친절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유독 엄격한 사람들이 있다. 철저히 자기를 차별하고 짓밟는 유형이다. 왜 이들은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고 그토록 모질게 구는 걸까.
나 역시도 그런 유형의 사람 중 하나였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나 자신을 스스로 하찮게 취급하고 있었다. 내 몫의 가사노동을 충실히 해내는 한편으로 일감을 얻기 위해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나를 위한 아주 작은 소비마저도 떳떳지 못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한없이 인색하게 굴어온 나였다.
자신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차별하지 않을 수 있다.
-전호근 <장자 강의> 중에서
문장을 접한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한 문장으로써 나 스스로를 통렬히 돌아보기 위해 이 두꺼운 책을 읽어온 거로구나.
옛사람은 자기를 위해 공부하여 마침내 남을 이루어주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하여 끝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전호근 <장자 강의> 중에서
저자인 전호근 선생이야말로 깊이 있는 고전 연구로 '남을 이루어주는 데'까지 이르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요즘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졌다. 어떤 목표에 목숨 거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무엇을 바라든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이루어 나가도 괜찮다고, 혹시 운이 나빠 영영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여 벌이가 남들보다 좀 적더라도 괜찮다고. 나는 장자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문 시대. 자살률이 치솟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마음 다치지 않고 살아남기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살면서 누구나 인생 나침반이 고장난 것 같은 시기를 마주하게 된다. 암만 애를 써도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기 힘들어 숨이 찰 때, 부족한 나 자신이 한심하고 수치스러울 때 가슴앓이를 하지 말고 장자를 읽어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장자를 읽고 자기 자신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음이 너그러워진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
누군가 당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무시하시라. 그리고 그 사람보다 건강히 살아남음으로써 쓸모 없음의 위력을 가뿐히 보여주시라. 장자의 그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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