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옵션쇼크…도이치증권 상무 '2조원 시세조종' 무죄 확정

김정연 2024. 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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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200 주가(빨간색)와 코스닥150 주가(파랑색) 그래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


2010년 장 마감 직전 2조원대 주식을 대량 매도해 코스피200 지수를 폭락시킨 혐의를 받는 도이치증권 상무 박모씨와 도이치증권 법인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주범격인 당시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직원들과 공모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항소심 판단을 인정하면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박씨와 도이치증권의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 사건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다고 17일 밝혔다.


‘코스피200 하락’ 조건 ‘풋옵션’ 미리 산 뒤 지수 폭락시켜


이 사건은 증권가에선 ‘11‧11옵션쇼크’ 로 불린다. 2010년 11월 11일, 오후 3시 장 마감 직전 10분간 시장에 주식 2조 4424억원어치를 낮은 가격에 대량 매도해 코스피200 지수를 7.11포인트(2.79%)나 떨어지게 한 사건이다. 원래 대량매도를 하려면 장 마감 15분 전까지 한국거래소에 미리 신고해 시장에 알려야 하지만, 이들은 거래소 신고도 최대한 늦춰 1분 늦게 보고해 시장이 대량 거래 사실에 대비하지 못한 채 하락폭이 더 컸다. 국내 투자자 손해는 약 140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건 직전인 오후 2시 19분부터 49분까지 30분간 이날 만기가 도래한 ‘풋옵션’(특정 상품을 지정 가격에 매도할 권리) 상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코스피200 지수 하락 시 이익을 얻는’ 조건의 옵션이었다. 결국 이날 코스피200 지수가 폭락하면서 이들은 풋옵션을 행사해 약 448억원 넘게 이익을 얻었다.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주범 외국인 3명…14년째 신병확보 실패


대법원 전경. 뉴스1

피고인 박씨는 당시 한국 도이치증권 상무로 재직 중이던 사람으로, 이 사건을 주도한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직원들과 공모해 시세조종을 한 혐의로 도이치증권 법인과 함께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홍콩의 공범들이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시세를 변동시킨 게 맞고, 박씨도 고의‧공모의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당시 지수차익거래 업무를 총괄하던 부서장으로 홍콩에서 당일 만기 풋옵션을 미리 매수한 뒤 장 마감 직전 대량으로 주식 매물을 던져 KOSPI200 지수를 폭락하는 ‘투기적 포지션’을 만들고 청산할 예정임을 알았다고 본 것이다. 또, 직원들에게 ‘보안 조심하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당부하고 거래소 보고도 지연시킨 점으로 보아 “범죄 실현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도이치증권에는 벌금 15억원을 물렸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박씨와 도이치증권 모두 무죄로 결론이 뒤집혔다. “투기적 포지션을 만드는 것과 주가 하락 시 이익을 얻는다는 것까지 사전에 박씨가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 “시세조종에 공동의 의사로 참여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1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청산‧대규모 거래‧지수차익거래 관련 문의와 답변 등은 일상적인 업무 내용일 뿐 그 자체로 범죄를 의심할 만한 특이한 거래가 아니었고, 홍콩지점의 공범들과 수조 원 규모의 시세조종을 공모할 정도 밀접한 관계나 신뢰를 형성한 근거가 없으며 그밖에 경제적‧업무적 이익도 없어 박씨가 개입할 동기를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박씨가 대화 내용을 삭제하고, ‘여의도 전역 파문~ 잠수타셔야 할 듯’ 이란 문자를 받은 적이 있지만 공모를 입증하기엔 충분하지 않다고도 봤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결론에 잘못된 점이 없다고 보고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검찰은 당시 주범격인 도이치방크 홍콩지점의 외국인 임원 3명도 불구속기소하고 인터폴에 수배했으나 결국 신병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들 중 한 명인 데렉 옹 당시 차익거래부문 상무가 사건 9년 만인 2019년 인도네시아에서 체포됐지만 현지 법원은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청구를 기각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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