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댄스 가르치다, 장례 가르친다…일자리 빼앗는 저출산 공포 [저출산이 뒤바꾼 대한민국]
지난 5일 대구시 남구 명덕효요양병원 부설 백화원장례식장.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소라(52·여) 실장이 빈소를 준비 중인 유족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올해 6년 차 장례지도사인 그는 장례 절차와 구비 서류 등을 고객에게 설명했다. 이 실장 자리에 놓인 명패에는 ‘흙을 만지는 여자’라고 적혀 있었다.
이 실장은 2019년까지만 해도 장례지도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가정주부였던 그는 취미를 살려 2009년 무용학원을 차렸다. 이후 10년 넘게 동네 어린이나 직장인 등에게 발레나 밸리댄스 등을 가르치다 장례지도사로 전업했다. 이 실장은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수강생이 급격히 줄 무렵 무용학원을 닫았다"라며 “그 무렵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다른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관심이 생겨 장례지도사가 됐다”고 말했다.
‘인구 절벽’…‘일자리 절벽’ 직결
경북 성주군에서 공장 통근 버스를 운전하는 배영해(68)씨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전업했다. 그는 2014년부터 대구 남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스쿨버스를 몰았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이 2021년 폐업하자 직장을 옮겨야 했다.
당시 어린이집은 원아 수가 감소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문을 닫았다. 이 바람에 운전기사 8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배씨는 “실직 후 다른 영유아 시설 일자리를 찾았으나 다들 직원을 줄이는 상황이어서 한동안 구직에 실패했다”며 “지금은 공장 통근 버스를 운전하거나 화물을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간한 ‘2022년 보육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2012년 4만2572곳에서 2022년 3만923곳으로 10년 새 27.4%(1만1649곳) 줄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한해 2000개 이상 문을 닫고 있다. 전체 보육아동수도 2012년 148만7361명에서 2022년 109만5450명으로 26.3%(39만1911명) 줄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부문 보육교사 실직 사태가 발생했다. 2012년 12만6239명이던 민간어린이집 보육 교직원이 2022년 11만6442명으로 7.8%(9797명) 줄었다. 같은 기간 가정어린이집은 10만1273명에서 7만6114명으로 10년 새 24.8%(2만5159명) 감소했다.
전국 100개 시군구에 산후조리원 없어
산후조리원도 저출산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산후조리원은 2015년 6월 기준 602곳에서 지난해 상반기 469곳으로 8년 새 22.1%(133곳) 줄었다. 2018년 6월(548곳)보다는 5년 새 14.4%(79곳)가 폐업했다. 이 사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0여곳엔 산후조리원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10월 한 산후조리원이 갑작스럽게 폐업하면서 산모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윤지(37·여)씨는 “넉 달 뒤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경영악화로 산후조리원이 폐업한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다른 산후조리원을 예약했다”며 “급하게 동네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바꿨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고 했다.
소아과 없는 농촌 마을, 발 동동
또 상당수 군(郡) 단위 지역은 소아과병원이 없어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 발을 구르는 일도 다반사다. 김민주(41·경북 영양군)씨는 “지난해 어린이날에 딸이 호흡기 질환 증세를 보여 안동까지 가서 입원시켰다”며 “영양에는 소아과가 없어 아이가 아프면 안동까지 50㎞가 넘는 산길을 운전해서 가야 해 병원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학생이 줄면서 PC방이나 노래방 등도 된서리를 맞았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PC방은 2018년 1월 1만527곳에서 지난해 1월 8421곳으로 5년 새 20.0%(2106곳) 감소했다. 노래방은 2018년 1월 3만2080곳에서 지난해 1월 2만7141곳으로 15.4%(4939곳) 줄었다.
이에 대해 충남대 육동일 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시군 단위는 물론 대도시까지 소멸위기에 놓인 거나 마찬가지”라며 “정부·지자체 등 관련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특단의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경호·문희철·박진호·김정석·황희규·안대훈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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