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극저출생, 초고령화 시대
스페인 대표 작가와 고생물학자가 함께 쓴 『사피엔스의 죽음』에 따르면 인간의 노화란 자연이 준비한 것도, 공포스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라면 늙어 죽기 전에 혹독한 환경과 천적, 부상 등으로 이미 죽음을 맞았을 인간이 잉여로 갖게 된 시간이 노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40이 넘었다면 자연 상태의 죽음을 넘어 ‘선물’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과학자들은 2020년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수명이 38세라는 것을 밝혀냈다. 당시 연구진은 “의학기술의 발달, 생활양식의 변화로 지난 200년 동안 인류 수명이 평균 2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80.5세, 우리나라는 83.5세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의 한계치는 여전히 논란인데, 최대 150살을 관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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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앞에 다가온 ‘노인 1000만 시대’
세계 최저 출산율에 더해 이중폭탄
절체절명 위기, 정치는 뭘 하고 있나
」
내후년이면 우리나라의 ‘초고령 사회’ 진입이 확실시된다. 2023년 말 기준 70대 이상 인구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대 인구를 추월하면서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73만 명으로, ‘노인 1000만 시대’가 코앞이다. 전국 17개 시·도의 절반인 8곳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당장 이번 4월 총선은 처음으로 60대 이상 유권자가 2030보다 많아 ‘선거도 고령화’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동반해 심각성이 더욱 크다. 고령화로 경제·사회적 활력이 줄어드는 데다 저출생 이중 폭탄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인구 감소 속도는 가팔라서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한다”며 한국의 ‘국가 소멸’을 우려했을 정도다. 통계청은 우리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이 현 0.7명에서 1명으로 반등해도 50년 뒤 총인구는 3600만 명대, 그중 절반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될 것이라 관측했는데, 현실은 0.7명 선도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그간 저출생과 관련한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속수무책이다. 과거 정부 때부터 엉뚱한 곳에 수백조원의 예산을 낭비하는 헛발질을 해 온 데다, 한두 가지 대책으로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책 『축소되는 세계』는 “한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럽·일본의 출산 장려 정책도 감소 추세를 약간 늦출 뿐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출산 장려책의 모범국이자 주요 선진국 출산율 1위인 프랑스도 합계출산율(1.8명·2020년 기준)이 대체출산율(2.1명· 현 인구를 유지하는 수준의 출산율)을 밑도는 현실이다. 책의 결론은? “인구도 경제도 성장은 없고 축소되는 시대, 축소되는 국가나 도시를 성장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합리적인 미래 경로라는 생각부터 받아들이며 축소를 관리하자”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새끼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환경에서 새끼를 낳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 진화생물학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는 도발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인구 감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감할 만한 문제의식이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을 지구촌 1호 소멸국가로 만들 순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극저출생 초고령화’라는 전대미문의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상황이다. 인구 1억2200만 명, 합계출산율 1.26명(2022년)인 일본도 비상한 위기의식 속에 인구 8000만 명 사수를 목표로 국가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사회가 함께 길러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아이가 살아갈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 고령화를 버티는 사회 디자인을 새로 짜는 것. 범국가적 총력전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치의 계절이라지만 눈앞의 정치 싸움뿐 이쪽저쪽 답이 요원해 보인다.
글 =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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