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연계 ELS 환매 돌아온다…잿밥에 홀렸다 지독한 된서리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1. 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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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19조3000억원대(총 판매 잔액 기준)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한 곳은 증권사다. 미래에셋·NH투자·하나·KB 등 증권사 판매 상품은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확정했다. 이들 상품 손실률은 마이너스 48~50%대다.

1월 8일부터는 은행권에서도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가운데 1월 8일을 기점으로 3년 만기된 87억원어치 상품 수익률이 -50.5%로 확정됐다. 원금 87억원 중 44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 은행권이 2021년 상반기에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으로는 첫 손실이다. 1월에만 만기 도래 금액이 8000억원대에 달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 예정인 홍콩ELS규모는 10조원이 넘는다.

ELS 손실을 본 고객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나 심각하기에

1월에만 8000억 손실

5768.50포인트.

지난해 연말 홍콩H지수 수준이다. 2021년 상반기 1만2000포인트 대비 반 토막 이상 떨어졌다. 2022년 한때는 고점 대비 60%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 지수를 종목에 편입시켜놓은 ELS가 안전할 리 없다. 2021년 이후 설정된 ELS 판매 잔액 19조원 중 이미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품이 50% 이상이라는 분석이다. 만기가 통상 3년이니 올해 초부터 만기 도래하면서 손실을 확정한 ELS 상품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중 가장 많은 판매 비중을 차지한 국민은행이다보니 금융소비자들의 민원사례도 나오고 있다.한 투자자는 “판매 당시 은행원이 ‘중국 경제가 안 좋다 해도 설마 주가가 절반 이상 떨어지겠느냐?’라고 하며 권유했던 상품인데 반 토막 수익률을 받으려니 하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투자자 A씨는 “은행원이 금융 전문가인 줄 알았더니 뒤에서는 본인 실적과 보너스만 챙기는 영업 직원에 불과했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며 “중간에 해약하려니 못한다 하다가 손실 규모 확대되니까 해약하라고 종용해서 더욱 황당했다”고 말했다.

급기야 ELS 손실을 입은 소비자끼리 결성한 ‘ELS 가입자 모임’에서 불완전판매를 규탄하는 금감원 앞 대규모 집회, 기자회견, 집단소송 등 행동에 나섰다.

ELS 손실 왜?

미중 무역 분쟁 격화…H지수 급락

ELS란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으로 만기까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을 뜻한다. 통상 코스피200, S&P500, 홍콩H지수 등 국가별 대표 지수를 기반으로 상품을 만든다. 가입 당시보다 일정 비율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률이 보장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작금의 반 토막 ELS 수익률 사건은 2021년 상품 설계 기반이 됐던 홍콩H지수가 2021년 상반기에 고점을 찍은 후 줄곧 떨어지면서 비롯됐다. 1월에도 지수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다 보니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 상품부터 대규모 원금 손실 발생 소지가 크다. 1분기 3조9000억원(20.4%), 2분기 6조3000억원(32.3%) 등 상반기에만 가입 잔액 52.7%(10조2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오게 돼 있다.

쟁점은 불완전판매, 인사고과

‘많이 팔아야 인사고과(KPI) 반영’?

ELS 판매 규모가 큰 국민은행이 실제 ELS를 많이 판 직원에게 인사 평가에서 이점을 줬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참고로 H지수 기반 ELS 판매 액수(윤한홍 의원실 자료, 지난해 8월 말 기준) 중 은행별 순위를 따져보면 국민은행(8조1972억원), 신한은행(2조3701억원), 하나은행(2조1782억원) 순이다. 이 중 국민은행의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4조6434억원에 달한다.

금융감독당국은 단기간 내 이렇게 많이 판매하게 된 배경이 단순히 파생상품 판매 한도 때문인지, 인사 평가에 가점을 부여했기 때문인지를 따지고 있다. 참고로 금융당국은 2019년 12월 해외 연계 금리 DLF 손실 사태가 벌어지자 재발 방지를 위해 은행 신탁에서 판매했던 파생상품 판매 한도를 은행별로 정했다. 그해 11월 파생상품 판매 잔액이 그 기준이 됐다. 국민은행은 DLF를 취급하지 않았기에 또 다른 파생상품인 ELS를 판매할 한도를 넉넉히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ELS 판매에 열을 올린 끝에 2021년 이후 약 13조원어치의 ELS를 팔았다. 이 중 H지수 기반 ELS 판매액이 8조원을 넘겼다.

그런데 국제 경제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2021년 초부터 미중 무역 분쟁이 뚜렷해졌고 미국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맞서는 식이었다. 이렇게 위험도가 높아지면 판매 한도를 줄여야 하는데도 2021년 내내 판매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가입자 사이에서 “당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스토리를 두고 한 은행권 관계자는 “2020년 기준 국민은행이 상대적으로 비이자이익(수수료) 부문 비중이 떨어진다는 외부 비판이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파생상품 판매를 강화해 이 부문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드라이브를 건 것은 맞다”고 말했다. 쟁점은 이를 KPI에 연동시켜 무리하게 판매하게 만들었는지,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실제 일어났는지다.

이와 관련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국민은행의 경우 변동성이 30% 이상 확대되면 자체적으로 한도 내 목표 금액의 50%만 판매하겠다고 내부 규정에 정했는데 2021년에 많이 팔리니까 그것을 80%까지 끌어올려서 판매한 사례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통상 은행권 KPI가 1000점 만점인데 고위험 ELS나 주가연계신탁(ELT) 상품 판매와 관련해서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주요 지표 점수 비중이 30~40% 정도 된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1000점 만점에 약 410점이 ELS 판매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손실 배상 어떻게?

이복현 “2~3월 내 결론”

1000건 돌파.

1월 초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ELS 관련 민원이다. 이와 관련 새해 금감원은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제일 먼저 현장조사에 나섰다. 이와 더불어 금감원은 조사 인력, 민원인, 금융사 직원 간 ‘삼자대면’을 통해 분쟁 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분쟁 조정 민원이 접수된 후속 절차다. 통상 민원이 접수되면 ‘삼자대면(자율 조정) → 합의 권고 → 분쟁조정위원회 심의’ 단계를 거친다. 삼자대면은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하기 위해 진행되는데 결렬될 경우 분쟁조정위에 회부해 처리하게 된다. 국민은행에서 손실을 본 금융 소비자는 “자필 서명이 제대로 안 된 서류 등 불완전판매 입증 자료, 녹취록에서의 은행원 발언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양측 합의가 안 되면 분쟁조정위에서 배상 비율을 책정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올해 2~3월이 지나기 전에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감독당국 욕심”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KB국민은행은 올해부터 초고령자 기준을 80세에서 65세로 확대하고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에게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는 해당 실적을 KPI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파생상품 판매 실적을 KPI에 반영하는 비율도 줄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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