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경수는 왜 심고 잘랐나… ‘인간중심주의’에 묻는다

손영옥 2024. 1. 16. 20:5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시장에 놓인 유리 상자는 센서가 있어 적정 수준으로 온도와 습도를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 팜 시설이다.

버섯이 소복하게 달린 나뭇가지는 지난해 빌라에서 잘려 나간 조경수라고 했다.

유화수 작가의 작품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에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인간중심주의를 건드려 제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은미술대상 받은 유화수 작가
제23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받은 유화수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송은에서 자신의 설치 작품 ‘재배의 몸짓’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유 작가는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거된 주거단지의 조경수를 소재로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윤웅 기자


전시장에 놓인 유리 상자는 센서가 있어 적정 수준으로 온도와 습도를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 팜 시설이다. 실제 내부가 좀 건조해지자 분무기로 뿌린 듯 물안개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 유리 상자 안에 비스듬히 누인 채 전시된 것은 썩은 나무와 거기서 핀 버섯이다.

“먹지 못하는 버섯이에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삼각형 모양 미술관 송은에서 만난 유화수(45) 작가는 언론 인터뷰가 낯선 듯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미술계 허리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송은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상이다. ‘재배의 몸짓’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을 제작한 계기를 물었더니 30년째 부모님과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오래 된 빌라 조경수가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싹둑 베인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필요해 심었다가 어느 순간 필요 없다고 잘라내는 거잖아요. 근데 그 쓸모를 누가 결정하나요? 한때는 벼 품종의 주류였던 통일벼, 유신벼도 인간의 관점이 달라져 지금은 먹지 않으면서 잡초 신세로 전락했잖아요? 이처럼 인간중심주의에 의해 존재가 결정되고 소멸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아직 ‘식물권’이라는 개념이 나오지 않아 윤리적 갈등은 없지만 나무의 쓸모를 정하는 기준이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인간중심주의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재배의 몸짓'(2023). 송은 제공


버섯이 소복하게 달린 나뭇가지는 지난해 빌라에서 잘려 나간 조경수라고 했다. 그러니 그것은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비식용 버섯을 애지중지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역설의 설치 작품이다. 죽은 목련나무 줄기 몸통에 그런 나무를 가지고 집성목으로 가공한 상다리와 의자 등받이를 붙여서 합체 시킨 작품, 죽은 꽃나무 가지를 벽에 진열한 작품도 함께 나왔다. 죽은 꽃나무 작품에는 센서가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가지가 미세하게 덜덜덜 떤다. 전동 톱으로 잘리는 순간 나무가 느낄 거라고 상상한 통증을 표현한 것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유화수 작가의 작품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에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인간중심주의를 건드려 제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는 동국대 조소과를 나왔다. 하지만 흙으로 인체를 빚는 식의 전통적인 조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입시 미술에는 약했어요.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요.”

졸업작품전도 미디어아트나 설치미술을 했다. 대학 졸업 후 노동을 주제로 한 작업을 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계절별로 인테리어를 달리 하기 위해 견고함보다는 싸고 철거하기 쉬운 ‘눈속임 인테리어’가 요구되는 노동을 목격했고 노동의 소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노동을 해도 자신들이 보이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리케이드 공사장 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등이 그들이었어요.”

지체 장애인들의 그림자 노동을 목격한 경험은 장애인들과 협업하는 커뮤니티 아트로 이어졌다. 몸이 불편한데도 비장애인에 맞춘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것을 본 그는 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런 질문과 고민 끝에 선보인 전시의 제목들이 ‘그림자 노동’(2018), ‘당신의 각도’(2018), ‘잡초의 자리’(2021) 등이다.

유 작가가 미대 졸업 이후 던진 질문과 작업 궤적은 우리 시대 이슈의 최전선에 있는 인간중심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를 건드린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