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한계' 식품업체 미래 먹거리는… CJㆍ대상ㆍ오리온 뛰어든 이 사업
성장 한계에 부딪힌 국내 식품·유통 업계가 앞다퉈 제약ㆍ바이오 시장을 넘보고 있다.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사업 확장에 나서는 모양새인데, 성과를 보려면 연구개발(R&D)에 장기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리온그룹은 지난 15일 5500억원을 투자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하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고 공시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ADC로 전세계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이오 기업이다. 오리온은 중국 국영 제약사와 손잡고 2021년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중국에서 대장암 체외진단 임상을 진행 중이고, 한국에서는 2022년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해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현재 난치성 치과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오리온은 이번 레고캠바이오인수로 “직접 신약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돼 글로벌 신약 기업으로 도약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CJ는 2021년 바이오 기업 천랩을 인수해 CJ바이오사이언스를 만들었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기술력을 가진 기업과 손잡고 제약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것. 천랩을 이끌던 천종식 서울대 교수가 CJ바이오사이언스의 대표.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과 ‘생태계’를 합친 용어로 체내 미생물과 그 유전자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개발한다.
사탕수수로 발효 조미료 ‘미원’을 개발한 대상그룹은 이에 기반한 기능성 신소재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21년 대상셀진 설립을 기점으로 생명공학을 이용한 화장품ㆍ의약품 제조 판매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지난해 항진균제 신약 개발 기업 앰틱스바이오와 75억원 규모 투자 계약을 맺고 바이오 사업 본격화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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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지 기대하지만, 장기 투자해야
식품 업계는 기존 식품 산업에서 쌓은 역량과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부상한 제약·바이오 산업 간 시너지를 노린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은 “CJ나 대상 같은 식품 기업은 발효 연구를 쭉 해왔기 때문에 동물 세포 배양, 즉 세포나 미생물 발효를 잘할수 있다”며 “이런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적용되고 바이오 의약품으로 스케일업 하는 데 강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연구원은 세계 바이오산업은 2018~2030년 연평균 6.7% 성장하고, 국내 수요도 같은 기간 6.78%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기원 학과장은 “식품 기업들이 바이오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 새로운 동력을 찾는 추세”라며 “식품과 바이오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식품 기업들이 바이오산업에서 더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바이오 사업은 성과를 내기까지 장기간 막대한 R&D 투자를 해야 한다. 주요 식품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1%대에 그쳐왔다. 반면 제약·바이오는 R&D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평균 6~7년이 걸리는 임상 시험에 전체 신약 개발비의 70%가량이 투입되지만, 각국 규제기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해 막대한 투자에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때문에 증권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오리온은 16일 전 거래일보다 17.51% 급락한 9만6600원에 장을 마감했고 장중에는 9만6000원까지 내려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식품과 바이오 간 막연한 시너지를 기대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식품과 바이오는 밸류 체인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다른 이종(異種) 산업”이라며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이 3000억원~1조원 정도 드는 데 임상 성공률은 7%대인 점을 고려하면 식품 기업이 이 정도의 고위험을 어떻게 감내하며 전략적인 투자와 혁신을 할 수 있을지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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