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지휘부 책임” 뒤집은 檢수심위…유족도 “굉장히 의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기소를 권고하면서 이태원 참사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사건을 맡은 서울 서부지검은 “김 청장의 주의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불기소를 주장했으나, 수심위가 이를 뒤집고 지휘부 책임을 인정해서다.
지난 15일 수심위는 김 청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공소 제기 여부 안건을 7시간 심의한 끝에 9(기소) 대 6(불기소) 의견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수심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는 기구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김 청장 기소 여부가 1년간 결론 나지 않자,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직권으로 소집했다.
수심위의 결론은 검찰 입장은 물론 기존 전망과도 달랐다. 유족 측은 수심위 회의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수심위가 김 청장을 불기소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윤복남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TF 단장)고 의심했었다. 그래서 결론이 나온 후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결론을 환영한다”면서도 “기소 권고에 우리도 굉장히 의아했다”고 말했다.
앞선 판례도 중대 재해에 대한 지휘부 책임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세월호 참사 관련 지휘부에 대해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3명이 숨진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 사건도 부산시 재난대응과장 등 공무원 4명이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의 논리는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피고인들이 최선의 방법으로 지휘하지 못했다는 점만으로 업무상 주의를 다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세월호 참사 2심 재판부)였다. 큰 틀의 결정을 내리는 지휘부에 인명 피해에 대한 형사 책임까지 지우긴 어렵다는 취지다. 이태원 참사 직후 윤석열 대통령도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2022년 11월)이라고 했다.
검찰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수심위 권고를 따를 의무는 없지만, “이번 수심위는 이 총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만큼, 결론을 흘려듣긴 어려울 것”(대검 간부)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검찰이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게 돼 “수사 부실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수사 결과와 수심위 의결 내용을 종합해 최종 처분을 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고를 따르지 않고 불기소하는 경우도 검찰로선 부담스럽다. 이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상태라 “윗선은 모두 빠지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유족 측의 의심대로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정해두고, 수심위는 명분용으로 소집한 것”이란 비판이 커질 수 있다.
일각에선 “검찰이 기소 결정을 할 경우 용산(대통령실)과 미묘한 긴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16일 “수심위 권고를 계기로 이상민 장관 등 윗선 수사도 본격화해야 한다”(홍익표 원내대표)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표 압박 고리로 삼았다. 여권 관계자는 “여권 입장에서 윗선 처벌은 찬성하기도,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려운 사안인데 이 총장이 수심위를 소집해 사건 장기화 여지를 열어뒀다”고 불편해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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