賞賞초월 '성난 사람들'…'미나리' 기적의 영화사가 또 일냈다
올해 에미상·골든글로브 등을 휩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할리우드의 주목받고 있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공통점은?
첫째, 한국계 감독·배우·제작진이 대거 뭉쳤다는 것. 둘째, 할리우드의 신흥 명가인 영화사 A24가 투자·배급했다는 점이다.
A24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최초' '이변'이란 수식어와 가장 친한 영화사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량쯔충의 아시아인 최초 여우주연상 및 작품상·감독상 등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후 '에에올')가 A24 작품이다. 백인 주인공의 실화 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중국계 이민자 아줌마의 황당무계한 멀티버스 모험담이 주요상을 휩쓴 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배우 윤여정이 한국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2021)도 A24가 투자·배급했다. ‘성난 사람들’로 아시아 배우 수상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스티븐 연은 역시 재미교포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 '미나리'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그렇다고 A24가 아시아계 작품을 전문으로 만드는 영화사는 아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의 기사 제목으로 대신 설명하자면 이렇다. ‘A24는 시대정신을 찾아 트렌드를 선도한다.’
할리우드 주류의 수면 위로 막 끓어오르기 시작한 이민자들의 목소리에 A24가 기민하게 반응한 결과란 얘기다. 2012년 출범한 소규모 독립영화사 A24가 불과 10년 만에 할리우드 시상식을 장악한 비결이다.
'라라랜드' 작품상 번복 해프닝…그 독립영화사
A24는 2012년 영화광 세 사람에 의해 뉴욕 맨해튼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창립자들은 1990년대 독립영화 황금기를 거친 뒤 영화 투자·제작 일을 해왔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작가주의 감독의 기발한 신작, 될성 부른 신인 발굴에 매진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하이틴 범죄실화극 ‘블링 링’(2013),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괴이한 외계인 영화 ‘언더 더 스킨’(2013), 드니 빌뇌브 감독이 ‘시카리오’ ‘듄’으로 거장 반열에 오르기 이전 작품인 ‘에너미’(2013) 등이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브리 라슨 주연작 ‘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에이미 와인하우스 다큐 ‘에이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인공지능 SF ‘엑스 마키나’가 모두 A24 작품이다. 이 영화사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더 위치’ 등 공포영화에 눈돌린 것도 이 시기다.
A24란 이름을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시킨 건 영화 ‘문라이트’다. 신인 배리 젠킨스 감독이 미국 마이애미를 무대로 가난한 게이 흑인 소년의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는 파란을 일으켰다.
시상자 워렌 비티, 페이 더너웨이가 실수로 작품상에 호명한 ‘라라랜드’ 팀이 무대에 올라왔다가 수상 명단을 보고 진짜 수상자는 ‘문라이트’라고 번복하는 초유의 해프닝이 대중에겐 무명에 가깝던 A24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렸다. ‘문라이트’는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조연상·각색상 3관왕을 차지했다.
그 감독이 넷플릭스 거절, A24 택한 이유 "시대정신"
A24는 신인 아리 에스터 감독과 데뷔작부터 손잡으며 공포영화 강자로도 떠올랐다. 단편 연출 경력이 전부였던 에스터 감독은 첫 장편 ‘유전’(2018)으로 단숨에 컬트 팬덤을 얻었다. 봉준호 감독이 ‘유전’ 메이킹 북에 추천사 격인 서문을 쓰는 등 다른 감독들도 각광하는 거장 반열에 올랐다.
이후 ‘미드소마’(2019),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등 에스터 감독의 전 작품이 A24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에에올’을 연출한 대니얼 콴·쉐이너트 감독도 데뷔작 ‘스위스 아미 맨’부터 A24와 함께했다.
‘엑스 마키나’(2015·알렉스 가랜드 감독), ‘애프터 양’(2022·코고나다 감독) 등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독특한 SF를 발굴하는 등 A24는 관행을 탈피한 새로운 재능과 소재, 장르에 과감하게 뛰어들면서도, 창작자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한국·중국계 배우 아콰피나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페어웰’(2019)에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룰루 왕 감독은 당시 넷플릭스의 거액 러브콜도 거절한 채 A24를 배급사로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감독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A24라는 브랜드는 함께 작업하는 창작자의 정체성과 얽혀 있으면서도 독특한 목소리를 옹호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예매체 ‘벌처’는 이런 A24 작품이면 믿고 보는 팬덤을 ‘A24 컬트’라 명명했다.
박찬욱 감독 차기작 '동조자'도 A24
박찬욱 감독의 미국 드라마 ‘동조자’도 A24가 참여한 작품이다. 퓰리처상 수상 원작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2021년 A24가 원작의 TV 시리즈 판권을 샀고,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자신의 X(구 트위터)를 통해 자랑하기도 했다.
미국 독립영화상 고섬어워즈 작품상을 받은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CJ ENM이 공동 투자배급) 또한 A24가 제작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골든글로브 수상엔 실패했지만 여전히 미국 현지에서 아카데미 잠룡으로 언급되고 있다. A24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 돌풍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3월 10일(현지시간) 개최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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