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집착하다 보면..." '선산' 연상호 감독의 꾸준함 비결

이선필 2024. 1. 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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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넷플릭스 <선산> 기획 및 대본 맡은 연상호 감독

[이선필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산>을 기획하고, 각본 작업에 참여한 연상호 감독.
ⓒ 넷플릭스
 

 
한국형 재난 드라마, 그리고 좀비물로 이젠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연상호 감독은 '가족'을 정면에 내세웠다. 오는 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선산>은 작은아버지의 사망으로 생각지도 않은 선산을 물려받게 된 주인공 서화(김현주)와 해당 마을 사람들과 엮이게 되며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다룬다.

다분히 스릴러 요소가 강하다. 여기에 일부 오컬트적 요소까지 더했다지만, 15일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은 가족의 이중성 내지는 양면성을 말하고 싶었다며 메시지를 강조했다. 애초에 가족과 왕래가 없던 주인공, 선산을 두고 각종 개발 사업을 기대하던 마을 사람들의 욕망이 뒤섞이며 드라마는 광기 어린 캐릭터들의 항연이 된다.

2024년에 맞는 시의성

해당 기획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소개된 바 있다. 작품화되기까지 10년이 걸린 셈. 직접 연출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으며 민홍남 감독이 연출자로 나서게 됐다. 민 감독은 <부산행> 등 연상호 감독의 작품 다수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오래 호흡을 맞춰왔다. 연상호 감독은 "중간중간 제가 다른 제작사에 제안하기도 했지만, 소재 때문인지 거절당하기도 했다"며 기획 배경을 전했다.

"<돼지의 왕>(2011)을 끝낸 뒤 한국적 정서가 담긴 스릴러를 생각하다가 시골 비닐하우스 교회와 선산이란 이미지를 떠올렸다. 전자는 <사이비>라는 작품으로 만들게 됐고, 후자는 계속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긍정적이지만, 선산 때문에 가족들이 싸움 났다는 이야길 많이 듣기도 하잖나. 한국의 특수성이라 생각했다.

민홍남 감독과 오래 일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8년이 훌쩍 지나가 있더라. 뭔가 시도할 때가 왔다는 그의 말에 이번 작품 연출을 제안했다. 전부터 <선산> 기획을 얘기한 적 있고, 황은영 작가, 민 감독과 같이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픽스>라는 작품이 있다. 기본적으로 스릴런데, 악마나 초현실적 요소가 덧씌워져 있다. 그런 게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은 "규격화된 스릴러와 멀리 떨어진 방식으로 가고 싶었다"며 <선산> 전반에 깔린 기괴한 정서를 언급했다. 파편화된 사회적 분위기, 각자도생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에 통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10년 전보다 지금이 가족이라는 주제를 꺼내기 좋다고 본다. 일종의 부족적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회랄까. 냉전시대나 격변기엔 거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구도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서로 교집합을 이루기도 하고 분리돼 있기도 하다. 복잡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이라는 최초의 집단 단위가 중요해진 것 같다. 이번에 제대로 가족의 양면성을 파보려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산>의 공식 포스터.
ⓒ 이선필
 
새로운 얼굴의 발굴

사실상 영화 작품을 오래 쉬고 있던 김현주에게 SF 여전사라는 캐릭터를 안긴 <정이>를 비롯해, 넷플릭스 <지옥> 시리즈 등 연상호 감독은 배우 김현주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추후 공개될 작품까지 총 네 작품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그는 "여러 얼굴이 있는 좋은 배우이고 현장에서 흔들림이 없는 배우"라며 "<반도> 때 구교환 배우도 그렇고 의외성이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간 김현주 배우님이 정의롭거나 올곧은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선산>을 통해 욕망에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지옥> 때도 액션 연기를 했는데 그에게 기대하기 어려웠던 모습이잖나. 그런 면들이 잘 어우러졌을 때 쾌감이 들더라. 류경수 배우가 맡은 영호는 계속 사건을 발생시키는 캐릭터인데, 류 배우가 정말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표현해줬다. 편집본을 볼 때 영호가 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재밌더라. 공식 포스터에 담긴 제사 장면도 영호 때문에 현장에서 추가한 결과물이다."

단순 열거할 수는 없지만,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비롯해 드라마 <지옥> 등 애니메이션 연출자 외에 그가 보인 실사 작품에서는 종말과 묵시록적 요소가 가득했다. 치열하게 그 세계 안에서 투쟁하는 캐릭터들도 결국 그 종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분명 연상호라는 창작자만의 인장일 것이다. 연 감독은 "사실 휴머니즘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 <사이비>를 막연하게 어두운 작품이라 하시는 분도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극단적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빛나는 휴머니즘이 있다. 그 순간을 제가 보고 싶어 하는 게 있나 보더라. 배경이나 소재가 무엇이든 미묘한 휴머니즘을 넣어왔다. <선산>도 그렇다. 시청자들과 같은 환경에서 감상하고 싶어서 공식 공개를 앞두고 집에서 TV로 잠시 봤다. 역시나 마지막 장면에 반짝거리는 휴머니즘이 있더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산>을 기획하고, 각본 작업에 참여한 연상호 감독.
ⓒ 넷플릭스
 
국내 영화 및 콘텐츠 산업이 어렵다 하는 시기에도 연상호 감독은 꾸준했다. 넷플릭스와 나름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그와 관련한 작품들이 공개되고 있다. "<선산>도 나름 위험도가 있는 프로젝트인데 선뜻 제 얘길 들어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라며 그는 "<돼지의 왕> 직후 다음 이야기를 쓸 수가 없어서 심각한 우울감에 빠졌었는데, 자학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도저히 영화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상념이 들어서 그걸 그대로 글로 적어본 적도 있다. <지옥>에 나오는 대사기도 하지만, 신나면 망한다라는 게 제 좌우명이다. 자기 성취에 스스로 감동한다든가 자기 실패에 너무 좌절하지 말자고 마음 먹고 있다. 요즘에 NBA 선수들 인터뷰를 많이 찾아본다.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등 말이다(웃음). 숱한 경쟁과 자기와의 싸움을 해 온 사람들이잖나.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 나름 치유가 된다.

마이클 조던이 그런 말을 했다. 자기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엔 아예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그게 바로 경기 승패다. 이기든 지든 자신은 본인의 슛 정확도를 높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더라. 슛을 잘 넣었는데 경기에선 질 수도 있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도 늘 흥행에선 한 발 떨어져 있으려 한다. 집착하기 시작하면 숨을 못 쉬겠더라. 영화화 과정을 생각하면 투자도 고려해야 하고, 신경 쓸 게 많다. 그럴 때면 만화 작업을 떠올린다. 영화는 내 노력과 별개로 투자가 안 되면 아예 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만화는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거든. 영화를 못하게 되면 소설을 쓰든 만화를 하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만화 작업을 놓지 않으려 한다. <돼지의 왕> 때 제가 적당한 존중과 조롱을 받으며, 즐기며 활동하고 싶다는 얘길 했던데 지금 딱 그러고 있다. 나름 괜찮은 인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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