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생태보전지역 버리려나”…왕피천 환경감시 예산 ‘0원’

이정헌 2024. 1.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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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온데 천지삐깔이 나는거지. 오염도 시간 문제겠지요."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 '왕피천 유역'의 환경감시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관리 예산 및 고용 현황'에 따르면 왕피천 관리요원과 감시원 고용 예산은 지난해 11억7000여만원이던 게 올해는 '0원'으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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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왕피천 유역 환경감시원 고용 예산 전액 삭감
주민 “감시원 존재 만으로 불법 행위 억제되는데…”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내 수곡리 일대와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왕피천. 녹색연합 제공


“쓰레기가 온데 천지삐깔이 나는거지. 오염도 시간 문제겠지요.”

경북 울진군 왕피천 유역 4초소에서 환경 감시 활동을 해온 윤석중(61)씨는 수화기 너머로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인근 구산리, 왕피리 등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20일 환경부로부터 환경 감시원 예산 전액 ‘삭감’을 통보 받았다.

윤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수달, 꺽저기(꺽지), 퉁가리 등 토종 생물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며 “생태계를 보전하려면 보호하려는 손길이 필요한 법인데, 위에서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 ‘왕피천 유역’의 환경감시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연합은 “왕피천 유역의 2024년 환경 감시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며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만 되고 실제론 방치되는 일명 ‘페이퍼 파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17일 밝혔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관리 예산 및 고용 현황’에 따르면 왕피천 관리요원과 감시원 고용 예산은 지난해 11억7000여만원이던 게 올해는 ‘0원’으로 주저앉았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0명 안팎을 유지하던 주민 환경 감시 인력도 ‘0명’이 돼 버린 것이다. 녹색연합은 “환경 감시원 없이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며 “사실상 보호구역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속사교 일대에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장면. 녹색연합 제공.


경북 울진군 왕피천 유역은 정부가 2005년 10월 14일 지정한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여의도 면적(2.9㎢)의 약 35배인 102.841㎢(약 3만1109평)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서 드물게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으로, 자연 환경이 원시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달, 산양, 삵, 담비 등 멸종위기야생동물의 다양성도 뛰어난 덕분에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생태 탐방과 야영을 위해 찾는 외지인의 유입이 적지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08년부터 9개 초소와 ‘주민 환경감시원’을 두고 왕피천 보호 활동을 이어왔다. 마을 주민 송재성(64)씨는 1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선 쓰레기 무단 투기, 임산물 불법 채취, 야생동물 불법 포획 등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이곳에 환경감시원이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법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도 “왕피천은 짐승들이 살아가는 길, 아지트”라면서 “사람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저희가 감시하고 지켜본다”고 말했다.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왕피천 계곡. 녹색연합 제공


마을 주민들은 환경부의 예산 전액 삭감이 지역 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가 2005년 왕피천 유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할 당시엔 ‘재산권 침해 문제’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 컸다고 한다.

송씨는 “현재 토지 3분의 2가량이 환경부에 매입돼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공장을 지을 수도 없다”며 “생태 보존과 생계 보상 차원에서 환경 감시 일이 주어졌던 건데 갑자기 예산이 삭감됐다. 생계도 막막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환경감시원 제도는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 당시부터 지역주민과의 합의 속에 만들어진 제도로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진행되어 온 사업”이라며 “환경감시원 예산을 원상 회복하고, 환경감시원 재고용 전까지 생태·경관보전지역 보전과 관리에 공백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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