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㊸] 한국이 자랑스러웠던 '외국 병원' 체험기
사고나 질병은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해외여행 중에 병원 신세 질 일이 발생하면 아주 난감하다.
지난해 겨울 미국 샌디에이고 딸네집에 한 달 가량 머물렀다. 이십 일 정도 여행하며 잘 지내던 아내가 갑자기 팔을 올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가지고 간 소염진통제를 며칠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 미국에서 병원 가면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적극적으로 병원에 가자는 이야기도 못 하고 속앓이만 했다. 며칠을 참고 지내던 아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병원에 가 보자고 한다. 치료비를 따질 처지가 아닌 것 같다. 딸과 함께 한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가는 자동차에 앉아 있는데 ‘쉽게 좋아지지 않아 여행을 중지하고 귀국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료비가 비싸다는데 얼마나 나올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아내가 처음 아프다고 할 때 치료비 걱정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 더 악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더니 예약을 하지 않아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로비에 환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는 가끔 한 명씩 들어 올 뿐 우리 부부 뿐이다. 한참을 대기하다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70대 후반의 나이 드신 의사는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30분 정도 진찰을 한 후 옆방에서 해부학책을 가지고 와 아픈 이유를 설명해 준다. 빡빡한 일정으로 여행하다 보니 어깨 주위 근육에 염증이 생겼다며 주사 2대를 놓고 약 처방을 해주며 너무 걱정하지 마란다.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던지 아내의 아픈 팔이 금방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여직원이 진료비 계산을 하더니 520불, 한화로 68만 원이란다. 잘못 들은 것 아닌가 하여 다시 물어보았다. 우리의 경우 만 원 안팎이면 될 텐데. 갑자기 미국은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과 함께 아프면 언제라도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워 모든 것을 접고 돌아가고파졌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아내는 어깨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비싼 치료비가 값어치를 한 것인가?. 가슴속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걷히면서 얼굴이 확 펴진다.
라오스에 연수 중인 딸네 집에서 지낼 때 손녀가 며칠째 열이 나고 배가 아파 학교도 가지 못하여 국제병원을 찾았다. 소아과 담당 의사는 청진기로 배를 조심스럽게 진찰하고 난 다음 독감이 진행되면서 배가 아픈 것 같은데 뎅기열일 가능성도 있다며 피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뎅기열이라고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자 열이 많고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심할 경우 치사율이 40~50%에 달하기도 한다고 되어있다. 치사율이 50%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겁이 덜컥 난다. 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 손녀가 배가 아프다고 울고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처음 열이 날 때 즉시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지난번 비슷한 증상으로 받은 약과 한국에서 사 온 해열제를 먹이며 차일피일 미루다 4일이나 지나 병원을 찾은 것이다. 보험이 되지 않아 감기 증상으로 병원에 들러도 4~50만 원 정도의 치료비가 나오기 때문에 사실은 병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검사 결과 뎅기열은 아니고 독감이라고 하여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처방을 받아 위를 진정시키는 약을 먹여 봤지만, 손녀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메스껍고 배가 아프다며 울어 병원을 떠날 수가 없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의사는 다시 진찰해 보면서 독감 바이러스가 시간이 지나 위장으로 옮겨 배가 아플 수도 있다면서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든지,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독감인데 엑스레이를 촬영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입원하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다행히 통증이 가라앉아 집으로 왔다. 진료 후 수액 맞고 피검사 했는데 병원비가 410달러, 55만 원이다. 지난번 미국 병원비 못지않은 엄청난 진료비를 지급하자 우리나라가 그리워진다.
그 이후 식사하는데 뭔가 큰 돌이 씹히는 것 같아 뱉어 보니 임플란트 치아가 빠진 것이다. 힘주어 씹었거나 삼켰으면 잇몸이 찢어지는 등 큰일 날 뻔했다. 임플란트한 한국 치과병원 채팅방을 통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많이 불편하면 현지 치과에서 붙여도 되고 잘 보관하셨다가 귀국 후 내원하면 될 것 같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음식을 먹는 데 큰 불편함이 없어 한 달 후 집에 갈 때까지 견디려는데 아내와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주변에서 소개받은 치과를 찾았다. 수도 비엔티안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완전 시골 분위기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6~7개의 방마다 오래된 치과 의자가 놓여 있으나 환자는 아무도 없다. 빠진 임플란트 치아를 의사에게 건네고 의자에 눕자 이리저리 살펴본 후 잇몸에 심겨 있는 임플란트 뿌리를 조금 갈더니 치아를 끼워본다. ‘잘할 수 있으려나’, ‘엉터리는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임플란트에 접착제를 묻혀 끼우고 10여 분 기다린 다음 입안에 묻은 접착성분을 제거하더니 끝났다고 한다. 간단하다. 치과 의자에 누운 지 20분도 안 된 것 같다.
간단히 끝났지만, 외국 병원이라 치료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된다. 딸이 직원과 라오스어로 이야기하더니 비용을 지급한다. 나오면서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만 킵이란다. 우리 돈 7천 원이다. ‘설마 그렇게 저렴할 리가’ 하는 생각에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치료비가 비쌀 것 같아 안 가려고 했는데. 현지병원이고 사회주의 국가 의료시스템이라 저렴한 모양이다. 이런 결과가 나올 텐데 의료비가 걱정되어 그냥 견디려고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평소 자식들에게 정주영 회장의 “해 봤어”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고 큰소리쳤는데 해 보지도 않고 주저했었다. 의사의 손길이 좀 투박하고 접착제가 잇몸에 붙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 오는 길에 저녁과 함께 맥주 한잔하며 자축했다.
외국에서의 치료비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 병원에 가는 것이 주저된다. 그래서 해외여행 때 온갖 약을 비상용으로 가지고 갔다. 여행 갈 때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것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륙 십만 원이나 낸 비용을 인터넷으로 보험회사에 청구하자 환율을 계산하여 다음 날 바로 통장에 입금되었다. 신기했다. 보험회사의 서비스가 이렇게 빠르다는 것에 감탄했으며, 한편으로는 여행자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언제 어디서나 큰 비용부담 없이 병원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탁월한 시스템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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