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기 전 알았다'...-40도 뚫고 온 트럼프팬, 코커스 점령 [르포]
15일(현지 시간) 오후 6시가 되자 미국 아이오와의 주도 디모인 중심가에서 5분여 떨어진 ‘역사 박물관’의 문이 열렸다. 공휴일인 마틴 루터킹 데이인데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 근처까지 떨어졌지만 주민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만삭의 임산부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이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었다.
특히 ‘프론트 로우 조(Front Row Joes)’라는 글씨가 적힌 옷을 입은 부부가 들어서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며 투표장 전체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맨 앞자리에 앉는 사람’을 뜻하는 ‘프론트 로우 조’는 밤을 새워서라도 트럼프의 집회 앞줄을 차지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모임이다.
테네시에서 왔다는 셰런 앤더슨(78)은 투표권이 없는데도 '살인적 추위'가 닥친 아이오와를 찾아왔다. 이유를 묻자 그는 “트럼프의 최근 네 차례 전국 집회 중 두 차례 집회에 참가했고, 아이오와 코커스도 직접 참관해 트럼프를 응원하려고 왔다”며 “(바이든 행정부로 인해)파멸 직전에 이른 현재 상황에서 백악관에는 신인이 아닌 검증된 사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임을 인증하는 유니폼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하자 그는 웃으며 흔쾌히 응했다.
등록 절차를 마친 주민들은 동네별로 3개의 방에 나눠 모였다. 그리고 “신(神) 아래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인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뒤 코커스에 돌입했다.
인디언 부족회의에서 유래한 코커스는 과거 방식처럼 개표를 참관할 대표자를 스스로 정하고, 모든 선거 운동원들의 발언을 돌아가면서 듣고 난 뒤 대표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도 트럼프 운동원의 발언에 대한 유권자들의 박수 소리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월등히 크게 들렸다.
운동원들의 마지막 연설이 끝나자 주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들고 있던 종이에 직접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었다. 토론의 시작부터 기표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투표 과정에선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가림막이나 별도의 기표소가 없었다. 오히려 사실상 이웃 주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지 후보를 밝히는 방식에 가까웠다. 기표를 마친 투표용지는 정면 테이블에 하나씩 제출됐고 즉각 결과가 발표됐다. 전체 흐름은 마치 한국의 학교 반장 선거와 유사했다.
이날 중앙일보가 참관한 3개 지역이 통합된 투표소의 투표 결과는 트럼프 12표, 니키 헤일리 9표, 디샌티스 3표, 비벡 라마스와미 9표, 아사 허친슨 1표로 집계됐다.
투표가 끝난 뒤 디샌티스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브랜다 포니(68)는 ‘디샌티스에게 승산이 있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말하기 어렵게 됐다”면서도 “여론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이길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투표의 전 과정을 관리한 패트릭 퍼틸은 “추운 날씨로 투표율이 상당히 저조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최소한 이곳 투표소의 투표율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며 “투표율만 놓고 본다면 열성 지지자들이 많은 후보가 다소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이날 아이오와 1657개 투표소에서 진행된 코커스가 끝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미국 언론들을 통해 “트럼프의 압승”이란 보도가 나왔다.
이날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금은 이 나라의 모두가 단결할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 축하 자리에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우리가 단결해서 세상을 바로잡고, 문제를 바로잡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든 죽음과 파괴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을 최우선(America first)에 두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모인=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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