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하자 '당첨', 이것까지 운이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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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준 기자]
"...텅 비어 있는데요?"
도시가스를 연결하기 위해 오신 직원분의 말을 단박에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인생이나 삶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직원분은 정말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 걸 바라본 얼굴 표정이었다.
"네...? 뭐가요?"
"여기 뒤쪽을 보세요."
뒤쪽을 확인한 순간 정말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목격했고, 내 머리도 텅 비는 느낌이었다. 이후 나와 직원분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함께 터트렸다.
새 집 이사하던 날
2023년의 끝자락, 다행히 추위가 한풀 꺾인 날 이사를 했다. 3년 전에 당첨된 인천의 한 아파트였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짐을 바리바리 챙기고 빼먹은 것은 없는지 두 번, 세 번씩 확인했다. 짐이 없어 용달을 불렀다. 1톤 트럭에 가득 실리는 양이었다.
나는 미리 이사 갈 집으로 가서 용달 직원분들이 짐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용달 직원분들이 짐을 들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미리 내려놓을 곳을 와이프와 결정해 놓았고, 그대로 실행했다. 직원분들은 전문가답게 큰 박스들을 턱턱 내려놓으셨다. 나는 테이프를 뜯어 안에 든 짐을 꺼내고 박스를 접고 현관에 내놓는 것을 거들었다.
이삿날은 참 정신이 없고 바쁘다. 그래서 놓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하루 일정을 계획해 놓았다. 오전에는 이렇게 짐을 내린 후 어느 정도 정리와 간단한 청소를 해놓고, 오후에는 냉장고 등 가전 설치, 도시가스 연결, 인터넷 연결, 책상과 책장 기사님 방문 등이 예정돼 있었다. 다행히 짐이 많지는 않아서 생각했던 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이제 가구들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게 착착 넣어두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널브러진 짐들 사이에 털썩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입주민 단체 카카오톡방에서는 끊임없이 입주민들이 정보 공유와 하자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5분만 쳐다보지 않고 있어도 금세 1000개가 넘게 쌓인다. 하나하나 읽기 귀찮아서 스크롤을 슥슥 내리다가, 나에게 필요한 정보나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잠시 멈춰 집중해서 읽었다.
▲ 입주민 단톡방에서 나온 대화들을 재구성해 만들었다. |
ⓒ 백세준 |
듣다보면 황당한 하자들도 많다. 창문이 통째로 깨져있거나 창문 유리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베란다 문은 있는데 문에 손잡이가 없어서 문틈에 손가락을 끼어넣어서 열어야 되는 하자도 있단다.
입주를 시작한 지금도 하자는 계속해서 발견되고, 공유도 계속된다. 우리 집도 크고 작은 하자가 약 80개였는데, 다른 입주민들은 100개, 200개가 넘는 곳도 많았다. 같은 아파트, 새 집이지만 그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뽑기 운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우리 집만 아니면 돼!?
그렇게 입주민 단체 카카오톡방을 한참 들여다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지나 도시가스 직원분에게 전화가 왔다. 곧 방문할 예정이니 집에 있냐는 확인 전화였다. 지금 집에 있으니 방문하셔도 좋다고 답하고 끊었다.
바로 몇 분 뒤 직원분이 들어오셨다. 들어오시자마자 마치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안방 베란다 구석에 있는 가스계량기를 먼저 보시고 주방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그때서야 가스레인지에 덮어놓은 비닐을 뜯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집을 지을 때 먼지가 들어가지 말라고 건설사에서 자체적으로 가스레인지에 팽팽하게 비닐을 씌워놓았는데, 지금까지 건드리지를 않았다.
▲ 사이즈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가스레인지 |
ⓒ 백세준 |
새 물건 샀을 때 비닐을 뜯으면 닳을까 봐 조심하는 것처럼, 새 집 새 가스레인지에 씌워져 있는 비닐을 밖에서 보기만 하고 그대로 둔 것이 화근이었다. 도시가스 직원분이 거침없이 쫙쫙 비닐을 뜯고 가스를 연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움직이면 안 되는 가스레인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아 이건 요새 새 집 아파트 옵션인가? 공간 활용을 위해 가스레인지를 옮기면서 쓸 수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 와중에 직원분의 퉁명스런 한 마디.
"이거 가스 연결 못하는데요?"
"네? 왜요?"
"여기 뒤쪽 보세요. 시공이 잘못돼서 하나도 안 맞잖아요. 이거 상판 다 들어서 엎어야 될지도 몰라요. 그럼 또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고요. 빨리 하자 접수하는 게 낫겠는데요?"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그제야 비닐 벗긴 가스레인지를 제대로 마주했다. 아직 때 묻지 않아 반짝거리는 가스레인지를. 근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가스레인지를. 이건 뭐, 요리하다가 저 구멍으로 다 빠지겠는 걸? 근데 그것보다 이걸로는 요리조차 할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닫자, 도시가스 직원분이 AS 하자 접수 직원으로 보였다.
"그럼 이거 어떻게 해요...?"
왜 그걸 나한테 묻냐는 듯 도시가스 직원분은 "일단 오늘은 가스 연결을 못하니, 예약 취소를 해드리고 다음에 수리되면 다시 예약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떠나셨다. 도대체 저 빈 공간은 무엇일까? 큰 하자를 당한 다른 입주민을 보고 약간은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나에게도 아직 방심하지 말라는 신호인가? 나는 재빨리 AS접수 센터의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분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두 살배기 아들도 있는데 밥을 못해먹는다는 우는 소리도 함께 했다. 다행히 빠르게 직원을 보내겠단다. 약 한 시간 뒤에 직원분이 집으로 와서 현장을 보았다. 스윽 훑어보시더니 이건 인덕션 전용으로 타공을 했다고 한다.
즉 아파트 입주자별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지, 인덕션을 사용하는지 다 다르기 때문에 미리 입주자가 옵션을 선택하면 그에 맞게 타공을 하는데, 우리 집이 인덕션을 사용하는 세대인 줄 알고 그렇게 한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고 담당자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추측하건대 상판을 엎을 것인가, 타공한 크기에 맞게 인덕션을 무상제공할 것인가, 기로에 놓인 것 같았다.
"이건 저희 측에서 잘못한 거라서 AS 해드리는 게 맞고요. 그런데 혹시 인덕션 옵션을 선택 안 하신 이유가 있나요?"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새 집에 입주하기까지 참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 같은 직장인이라면 중간중간에 연차를 사용하면서까지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특히 입주하기 전 두세 달 전에 자신이 입주할 집에 하자가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간이 있는데, 하자가 맨눈으로 보기에 한계가 있다보니 많은 입주민들이 관련 업체를 알아보고 맡겨야 한다.
또한 하자라고 하기엔 애매한 것들도 있다. 기분이 참으로 나쁘달까? 이를테면 화장실 천장돔 안이나 수납장, 서랍장 안에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대변부터 창문에 빨간 매직으로 욕을 휘갈겨놓기도 한다.
눈에 보이게 욕을 써놓기도 하지만, 벽에도 욕을 써놓고 벽지 도배를 해서 나중에야 알게 될 때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집은 이 정도는 없거니와 성격상 바닥에 찍힌 것 정도는 넘어가고, 큰 하자가 있을 때만 신경을 쓴다.
다른 아파트에 먼저 살아본 입주민들 이야기로는 통상 새 아파트에선 하자가 많아 첫 입주 뒤 몇 년간은 AS 접수를 하고 고치면서 사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같은 아파트 브랜드의 집 안에서도 내 집이 괜찮은 집이길 언제까지 기원해야 될까? 그나마 언론에 자주 나오고 있는 아파트 관련 시공 문제 정도가 아니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끊임없이 오르기만 해 비싸게 형성된 집값에 비해, 그 값어치를 못하는 초라한 상태. 아파트 청약도 거의 운이라는데, 시공조차 뽑기 운에 맡겨야 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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