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종교 시대]⑤"진짜 재미와 위로"…홍대 성(性)지가 성(聖)지가 되다

서믿음 2024. 1. 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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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비' 선원 준한스님 인터뷰
2022년 홍대 인근에 터 잡아
종교 색채 뺀 재미·위로 공간으로 단장
한해 국내외 6000여명 찾아와
"행복 시작은 '나'를 아는 것"

편집자주 - 대다수 종교에서 예비 성직자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 가치의 영향도 주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종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을까요. 아울러 지금 시대에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속사정을 들여다봅니다.

젊음의 거리 홍대 인근에는 '저스트비(JustBe)'란 이름의 명상 게스트하우스가 존재한다. 법당과 숙소를 갖춘 6층 규모의 선원(禪院·참선하는 곳)으로 2022년10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통적 개념의 선원과는 다르다. 다국적 청년이 모여 채식과 명상, 대화를 즐기는 ‘글로벌 수행 놀이터’다. 기획자는 2006년 미국에서 귀국해 출가한 준한 스님. 1000일 기도 끝에 청년들과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을 얻어 산을 떠나 다시 도시로 나왔다. 준한 스님은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본래 마음은 하늘처럼 넓고 땅처럼 견고하며 바람처럼 걸림이 없다”며 “그런 깨달음의 문까지 청년들을 인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빼고 재미와 위로가 있는 공간으로 단장했고, 그런 접근은 청년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1년간 6000여명이 저스트비를 다녀갔다. 준한 스님은 포교전략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임을 강조했다. ‘누구나 삶의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곳’을 현재 4명의 스님, 10명의 청년이 꾸려가고 있다. 그 일원인 준한 스님에게 저스트비의 존재 의미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물었다.

저스트비 홍대선원에서 준한스님(가운데 안경 쓴 남자)과 스태프, 방문객들이 생일파티하고 있다. [사진제공=저스트비 홍대선원]

- 요즘은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지내는지.

▲15년간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청정한 첩첩산중에 있다가 2년 전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서 살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많이 무너짐을 느낀다. 요즘은 일주일에 5일 정도를 산에서 보내고 있다. 깊은 산과 도시를 소요자재(逍遙自在·무언가에 속박되지 않는 삶)하며 지낸다.

- 홍대에 도심 속 명상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한 지 두 해가 지나고 있다. 의도한 바가 있었을 텐데 잘 이뤄지고 있나.

▲제 의도는 단순했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도록 멍석을 깔고 뒷바라지하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펼쳐질지 상세히 그림을 그리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펼쳐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는데 다이내믹한 일들이 벌어졌다. 댄서와 모델, 음악하는 친구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이면서 다른 장르의 예술가, 외국인과 소통하는 장이 마련됐다. 이곳을 찾는 자칭 불교 신자는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이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인들도 꽤 많이 온다. 요새 청년들이 종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외롭고 힘든 청년들이 와서 힘을 얻어가는 종교의 틀을 깬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청년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주요 소통 채널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명상, 요가, 다도, 채식, 환경 등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이 팔로우했다. 재밌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슬슬 자리 잡고 있어 뿌듯하다.

- 특별히 중점을 두는 지점이 있나.

▲중요한 건 저 자신이다. 저스트비는 저 자신의 수행을 위해 만든 곳이기도 하다.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삶에 휘둘리지 않고, 밝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함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산속에 있는 게 좋다. 극락세계다.(웃음) 하지만 부딪히기 위해 일부러 도시로 나왔고, 실제로 수많은 일과 마주하고 있다. 진짜 수행은 저잣거리에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법적인 문제부터 돈 문제, 선원 식구들 간의 화합…. 그런 문제들 속에서 자신을 직면하며 나를 바로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불교 핵심은 돈과 명예, 권력 등 항상 밖으로 향하는 관심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다. ‘회광반조(回光返照·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란 말이 있다. 항상 자신을 돌이켜 보고 부족한 부분을 향상하는 것이 수행이다.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 외국인 방문객이 더 많은 편인가.

▲여행 시즌에는 외국인이 많고, 비수기에는 한국 청년들이 많다. 아직은 한국 청년들이 더 많은 편인데 앞으로는 외국인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구글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영리단체로 인정해 지원을 약속했다. 전 세계의 비건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 ‘해피카우(HappyCow)’에도 저스트비가 등록이 됐다. 최근 그쪽 대표가 한국관광공사 주관 행사 참석차 방한했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

- 문을 연 후 1년간 많은 청년이 오갔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

▲이곳은 저스트비 이전에 김치게스트하우스였다. 쾌락의 끝을 달리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이른바 홍대의 ‘성(性)지’였다. 그곳에서 음악이 하고 싶어 한국에 온 21살 칠레 청년을 만났다.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면서 무료 숙박하는 친구였는데 여러 면에서 의외였다. 몸에 문신이 하나도 없어 물어보니 문신을 하면 헌혈을 못 하기에 안 했다고 하더라. 음악을 하면서도 클럽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때 마음이 동해 내가 너의 최초의 팬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저스트비의 창업 멤버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같이 지내고 있다. “이전까지는 혼자였는데 이제는 가족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게스트 중에는 미국에서 온 17살의 여학생도 있었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깨달음을 찾는 구법 여행 중 한국에 왔다가 함께 길을 걷는 도반(道伴)이 되었다.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이들이 모여 함께 자고 수행하며 웃고 마음을 나누는 ‘글로벌 수행 놀이터’가 되는 모습이 흡족하다.

- 홍대에 선원을 세웠다는 자체로 큰 관심이 쏠리는데 부담스럽거나 조심스러울 것도 같다.

▲사실 그렇다. 그래서 처음 홍대로 나왔을 때 일 년 삼 개월 동안 바깥에 알리지 않았다. 순수한 의도로 밑바닥에서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야지 언론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기사를 보고 기성 종교인들이 너무 많이 오게 되면 청년 중심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종교인은 옆에서 뒤에서 서포트해야지 너무 앞에서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이 굉장히 예리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조심스럽지만, 청년들은 기성 단체나 조직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순수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냥 떠나버린다.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했던 건 아니다. 한 달 건물 임대료만 1500만원에 달한다. 다행히 언론에 소개된 이후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이 몰려들고 있다. 전 세계에서 커피, 차, 빵, 쌀 등을 보내주신다. 그런 마음은 청년들에게 감사함으로 전해져 ‘나도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 이 정도 규모의 선원을 꾸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번아웃이 오진 않는지. 지침이나 넘어짐을 어떻게 비워내나.

▲스님도 번아웃이 온다. 그럴 때면 산으로 보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함께 일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럼 경치 좋은 국립공원 깊은 곳에 3일씩 또는 일주일씩 다녀오게 한다. 바라기는 저스트비가 자원봉사하는 곳보다는 삶의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 몸 버려가며 경쟁해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큰 그림이다. 일 년에 9개월은 함께 일하고, 나머지 3개월은 저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목표다. 함께 성장하며 자기 삶을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

- 종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종교라는 틀을 좀 허물었으면 좋겠다. 종교 세 확산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본다. 종교인들끼리 교류하고 화합해서 하나 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富)와 빈(貧), 여(與)와 야(野) 등의 대립 구도 속에서 종교인들이라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우리 세대에 한줄기 따뜻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종교가 사회악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종교라는 틀 또는 벽을 허물 수 있을 때 우리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 국내외 여러 곳에서 저스트비를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이상을 품고 있나.

▲도심 속 명상 게스트하우스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처음인 듯하다. 현재 부산, 전주, 문경 그리고 뉴욕, 싱가포르, 바르셀로나 등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 인적 자원이나 브랜드를 공유하고 싶다고 해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중요한 건 저스트비의 주인은 ‘우리’라는 점이다. 바라기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널리 펼쳤으면 좋겠다. 저나 스님들은 옆에서 또는 뒤에서 거들뿐이다.

- 저마다의 길을 찾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모든 괴로움과 불안은 자신을 믿지 못함에서 비롯한다. 이게 가장 슬픈 일이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구에게 믿어달라고 할 수 있나. 근데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 얼마나 무한한 힘과 지혜, 잠재력을 지녔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그걸 아는 게 나를 찾는 것이다. 어떤 종교, 어떤 방법도 괜찮으니 용기 내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저 역시 매일 길을 걷는 사람이다. 목적지가 있다기보다 걷는 것 자체가 목표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지이다. 모두가 함께 걸을 친구를 찾아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일단 방에서 나오시라. 갈피가 잡히지 않으면 저스트비에 오셔서 함께하셔도 좋다. 24시간 언제나 열려 있다.(웃음)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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