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2억”…보험 허들 못 넘는 유방암 치료제
특히 삼중음성유방암은 절반 이상의 환자가 진단 후 3~5년 내 재발을 경험하며, 뇌나 폐로 최초 원격 전이되는 비율이 약 70%에 이를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항암화학요법으로 1차 치료에 실패했을 경우 무진행 생존기간은 3~4개월에 불과하다.
현재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선택지로는 길리어드사이언스의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 다이이찌산쿄·아스트라제네카의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의 약값은 연간 최대 1~2억원대로,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16일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의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 청원 글이 동의 수 5만3000여명을 기록했다. 해당 사안은 국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해당 글에서 청원인은 “아내가 2010년 삼중음성유방암에 걸린 이후 완치와 재발을 반복해 뼈, 신장, 뇌까지 전이된 상황”이라며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 신청해 유일한 치료제인 트로델비를 투여 받기 시작했지만 한 번 주사 맞는데 530만원, 1년이면 약 2억원을 들여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힘들게 대출을 받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이마저도 어려운 환자분들은 치료를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촉구했다.
트로델비는 현재 세포독성항암제를 제외하고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와 관계없이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 2차 이상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다. 지난해 11월 제8차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해 건강보험 급여를 위한 첫 관문은 넘었지만 여전히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와 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 후 심사가 남아있다.
또 다른 유방암 치료제인 엔허투 역시 급여 허들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에 반응이 떨어지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HER2) 양성 유방암 △HER2 저발현 유방암에 효과가 있지만 연간 최대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가 발목을 잡는다.
2022년 9월 도입 이후 환자들은 2023년 2월부터 두 번 연속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급여를 적용해달라고 정부에 전달했다. 청원동의는 5만명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해 5월 암질심을 통과했지만 아직 약평위를 넘지 못했다. 지난 12일 열린 약평위에서도 ‘재심의’가 결정됐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제약사의 재정분담(안) 보완 후 2월 약평위에서 재심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늦춰지는 보험 적용에 환자나 기업 모두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한 유방암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는 “정부는 항상 최선을 다해 논의한다고 하지만 결국 효과보다 돈(재정)이 우선인 것 같다”며 “기업에서 이윤을 포기해야 빠르게 결정되는 건지 의문이다. 자꾸 늦어지는 정부 결정에 환자들만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환자단체는 급여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는 16일 성명문을 내고 “약평위에서 재심 결론을 낸 상황을 믿을 수 없으며 매우 실망스럽다”며 “국내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국 환자, 가족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닿을 때까지 정부와 사회에 계속 호소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엔허투 재심의에 대한 구체적 사유를 파악 중”이라며 “약가를 전 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제시해 추가 협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내달 약평위에선 엔허투의 혁신 가치가 반영되기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 관계자는 “트로델비 청원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데, 30~40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은 유방암의 특성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면서 “이번 청원이 트로델비 급여 적용의 시급성이나 필요성을 증명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제쯤 약평위 논의가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환자들의 요구도가 높은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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