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부담금 전수조사·원점 재검토… 중대재해법은 시간 필요"(종합)
91개에 달하는 현행 부담금 구조조정 지시… "경제 의지 위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앞두고 "시간 조금 더 필요하다" 우려
김정은 위원장에 "스스로 반민족적, 반역사적 집단 자인" 비판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재원 조달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며 "91개에 달하는 현행 부담금을 전수조사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연 24조원가량 걷는 준(準)조세 성격의 법정부담금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지시한 것으로, 총 91개 항목이 대상이다. 정부는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부담금은 대거 폐지·경감하고 부과 면제 대상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자유로운 경제 의지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부담금은 과감하게 없애나가야 한다"며 이 같은 지시를 건넸다.
법정부담금 징수액 어느새 24조원… "국가는 조세를 통해 비용 조달해야"
부담금은 세금은 아니지만 특정 공익사업과 연계해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돈이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2002년 7조4000억원이던 법정부담금 징수액은 올해 24조6157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이 기간 부담금 종류는 102개에서 91개로 줄었지만, 국민과 기업이 영위하는 각종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징수액이 늘어난 결과다.
이에 정부는 재정 수입 감소 우려에도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불합리한 부담금을 대폭 줄이고 감면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세웠다. 윤 대통령 역시 "오늘 회의에는 불합리하게 부과되던 부담금을 폐지, 통합하는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된다"면서도 "이번에 정비하는 5개의 부담금은 위헌 결정을 받아 실효됐거나 부담금을 협회 회비로 전환하는 것으로 국민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고 정부 차원의 재검토를 재차 당부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환경오염을 막거나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긍정적인 부담금도 있지만 '준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조세를 통해 비용을 조달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행위에 예외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부담금"이라고 부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여전히 묵묵부답… "현실 여건 감안해 시간 더 필요"
윤 대통령은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윤 대통령은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 현장의 영세기업들은 살얼음판 위로 떠밀려 올라가는 심정"이라며 "정부가 취약 분야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단체도 마지막 유예 요청임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국회는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중소·영세기업의 부담과 준비 미비를 들어 적용 대상 확대를 2년 더 미루는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 처리가 불발됐다. 윤 대통령은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중소기업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다.
민생 관리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연탄 세 장으로 버틴다는 이른바 '미등록 경로당'에 대한 기사를 언급하며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미등록 경로당을 조속히 전수조사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밖에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산업은행법'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위한 '주택법 개정' 등을 지목하면서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속도를 내 달라"고 말했다.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 발언에 "북한 스스로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집단 자인한 것"
이날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꺼냈다. 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전날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명기하는 것이 옳다. 헌법에 있는 '북반구,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및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인근 포병 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균열시키기 위한 정치 도발 행위"라며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국민들에게 확고한 안보관 확립을 요청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위장 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도발 위협에 굴복해 얻는 가짜 평화는 우리 안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며 "우리 국민과 정부는 하나가 돼 북한 정권의 기만전술과 선전, 선동을 물리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과 달리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며 정부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한 점도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 주민이 아니다"며 "북한 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자유와 인권과 번영을 누릴 권리를 가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우리는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정부가 탈북민의 정착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는 동시에 통일부에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추진, 외교부에는 탈북민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 공조 강화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제가 의장으로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도 탈북민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멘토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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