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중단하면 누구에게 득일까 [박영국의 디스]
투자유치도 마케팅…기업 떠나면 어디서 세금 걷을 건가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자' 선동 휘둘리지 말고 반도체 지원 힘써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연 민생 토론회에서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을 공언했다. 당초 올해 말 일몰 예정이었던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효력을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나오는 ‘대기업 퍼주기’ 비판에 대해 “거짓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대기업은 세수(稅收)의 원천이다. 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돈이 적어지면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되고, 각종 복지정책에 재원을 투입할 여력도 위축될 수 있다. 진보 정치권과 언론에서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두고 ‘큰 기업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 힘들게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샘물은 무작정 많이 퍼다 쓴다고 능사가 아니다. 원천이 마르지 않게, 나아가 더 많은 물이 샘솟도록 관리하는 게 우선이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세금을 많이 받아낼 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경기 남부 지역에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2047년까지 총 622조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기업들의 투자계획 상당부분은 지난해 3월 통과된 K칩스법과 맞물려 수립된 것이다. 정부가 판은 크게 벌여놓고 기업들에게 투자를 요청하면서 입을 씻을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K칩스법의 주요 내용은 국가 전략 기술 시설 투자에 대해 최대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이지만, 그나마 대기업에게는 공제율이 15%로 제한된다.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국내 기업들은 새로운 연구개발이나 생산설비 증설 수요가 있을 때 국내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잘못된 투자 판단 한 번이 기업의 도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감성이 아닌 이성에 근거한 치밀한 투자 전략이 글로벌 기업에게는 필수적이다.
아무 혜택도 없고, 세금 부담만 과중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애국심에 근거해 국내에 투자한다? 그런 소아병적 마인드를 가진 경영자는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기 전에 당장 해당 기업 주식을 산 투자자들부터 빠져나갈 일이다. 경영자를 국회에 불러다 호통을 치건, 시민단체들이 기업 사옥으로 몰려가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건 간에 기업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일을 벌일 수는 없다.
국가가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일종의 마케팅이다. 투자 조건과 투자 이후 사업 환경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
반도체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은 반도체지원법(CSA)을 통해 390억 달러(약 51조원)의 보조금을 풀었다. 유럽도 역내 기업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기존 10%에서 2030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430억 유로(약 61조원)를 투자한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 지원에 1조위안(약 178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일본도 지난해와 올해 도합 2조엔(약 18조원)의 반도체 지원 기금을 편성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투자 세액공제는 다른 국가들도 기본으로 깔고 간다. 오히려 대기업 대상으로는 15%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세액공제율이 미미한 수준이다.
다들 거액의 지원금을 당근으로 제시하는 마당에 우리는 남들 다 해주는 투자 세액공제마저 없앤다면 누가 득을 볼 것인가. 최소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아닐 것임을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발표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 방침에 대해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총선용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일축했다.
불과 세 달도 안 남은 총선을 겨냥했다면 당장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전면 폐지하고 세수를 늘려 생활지원금이라도 뿌리겠다고 선언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다음 정부에서나 본격적으로 효과가 체감될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이 눈앞에 다가온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부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 배불리 먹자’는 식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오랜 기간 반도체가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 되도록 길고 넓게 보는 정책을 견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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