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안 놓치고 5400억 상속세 마련…한미약품의 묘수
OCI 회장도 지주사 지분 적어 백기사 필요
업계 "OCI, 과도한 개입 시 부광약품 전철 우려"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에 지주사 지분을 매각하면서 양 사 통합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상속세 5400억원 납부자금 마련이다. 한미약품은 자금 마련을 위한 지분매각 추진 과정에서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첫 번째 조건으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업계 관계자가 16일 전했다.
당초 한미약품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라데팡스는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했고, 한미약품은 라데팡스 등 자문사를 통해 지분 매각 대상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 관계를 유지한 운용사여서 지분 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은 처음부터 지분 매각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PEF나 대기업에 블록딜로 지분을 넘기면 몇 년 못 가서 경영권이 넘어가 한미약품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 방법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 하면서 가깝게 지내고 신뢰를 가진 사이였다고 알려졌다. 송 회장은 국내에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와 함께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을 합치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통한 통합을 결정한 요인이라고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과 임 사장 모두 약한 지배력을 지지해줄 백기사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이번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 따라 양 사는 이번 지분 거래를 '합병'이라는 일반적인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다.
한편 한미약품과 OCI는 "두 그룹의 통합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혔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업계 최초의 '이종결합'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국내 재계가 전반적으로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유망산업으로 보고 투자를 강화하는 분위기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제약'이라는 전문분야에서 기대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OCI의 투자 의지와 실행력이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 "신약 개발에 거대 자본을 투입해 파이프라인을 늘리거나, 글로벌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가 동시 이뤄진다면 분명히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제약업계 한편에선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고 섣불리 개입하지 않아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부광약품은 인수 후 적자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켰다는 반발도 나왔다.
이와 함께 아직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매각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약업계에서 나온다. 제약업계는 재벌 계열사가 아닌 경우 국내 최상위권 제약사도 연매출액이 1조~2조원대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약품처럼 적극적인 R&D와 해외 진출 등으로 주가가 상승하면 향후 상속·증여 시 오너 일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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