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5000개 팔린 화웨이 AI칩…반도체 자급 아이콘 부상

문채석 2024. 1. 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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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 등 中 '큰손'들, 자국산 칩에 몰려
엔비디아 맹추격…中 'AI칩 독립' 가시권
"자국 기업에 납품… 美에 중요 메시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IT기업이 미국 수출 통제로 엔비디아에서 H20 같은 최신 인공지능(AI) 칩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체품인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910B' 칩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바이두에 1600개의 칩을 공급하기로 한 것을 포함해 자국 내 주요 인터넷 기업들로부터 적어도 5000개의 칩을 수주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화웨이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어센드 910B'가 자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미국 엔비디아의 GPU A100가 대중 제재로 공급이 막히면서 대체품으로 빠르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국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국 반도체 자급'의 상징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어센드 910B는 2019년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출시한 910프로세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910 프로세서는 화웨이의 '다빈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다빈치 아키텍처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AI 연산용 신경망처리장치(NPU)다. 기존 CPU가 1번 연산할 때 이 아키텍처는 같은 시간에 4090번 연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7㎚·(㎚=10억 분의 1m) 극자외선(EUV) 공정이 적용된 이 회사의 플래그십 칩 '기린 990'도 같은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어센드 910B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건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이 막히기 시작한 2022년 10월부터다. 미국은 이때 첨단 AI칩인 엔비디아의 A100와 H100의 대중 수출을 통제했다. 이후 엔비디아는 성능이 떨어지는 A800, H800 등 저사양 칩을 팔았지만 일년 후인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가 '성능 밀도(performance density)'라는 신개념을 적용해 추가 규제하면서 이들 칩 수출까지 막혔다.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공급한 GPU 'RTX 4090D'는 중국 고객사들이 외면했다. 이 칩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수출 통제를 준수하기 위해 RTX 4090의 성능을 낮춘 버전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 IT기업들은 어센드 910B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센드 910B가 A100의 대체품으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공정기술이 유사한 데다 성능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이 칩에 대해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의 'N+2'(7㎚) 미만 공정을 사용해 제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A100는 6~7㎚ 공정을 활용한다. 공정 수준을 비교하면 결코 처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칩 성능도 큰 차이가 없다. 일본매체인 아시아 AI타임스에 따르면 어센드 910B 속도는 A100보다 18% 느리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엔비디아 칩보다 18% 느리다는 보도가 맞는다면 성능면에서 어느 정도 추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어센드 910B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통해 비밀리에 안보 분야에서 이 칩을 활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어센드 910B를 비밀리에 가짜뉴스 제작(정보전), 로봇·드론 등과 융합(살상무기), 지휘관 의사결정 보조(작전수행능력 강화)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설비가 뒤처져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수요에 적기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센드 910B 공정 수준이 7㎚까지 올라왔어도 EUV 장비가 없으면 수율(양품 비율)과 성능이 낮아지고 제조 시간은 길어진다. 중국은 EUV 노광장비 반입 제한으로 DUV 노광장비에 의존하는 처지다. 화웨이 플래그십칩인 기린 990은 대만 TSMC의 EUV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DUV로 만드는 어센드 910B 수율은 EUV로 만드는 엔비디아 A100의 절반 이하, 생산 비용은 두 배로 추정했다. 전력 소모량도 더 많을 것으로 봤다. 효율적으로 회로 패턴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7㎚ 공정 기준으로 EUV를 쓸 경우 노광 작업을 28번만 하면 되지만 설비가 없으면 두 배인 54번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어센드 910B 수율은 10~20%대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또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반도체 효율을 높이려면 근처에 고성능 '니어 메모리'를 설치해야 한다. 주요 니어 메모리 반도체 제품은 고대역폭메모리(HBM), 그래픽더블데이터레이트(GDDR) 등이다. 화웨이는 미국 규제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이저 HBM 업체 제품을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엔비디아 첨단 칩 공급이 어려워진 중국 IT기업들의 자국 칩 메이커 의존도는 높아질 전망이다. 화웨이는 올해 하반기 중 새로운 하이엔드 AI칩을 출시할 계획이며 알리바바의 칩 자회사인 T-헤드도 AI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다. WSJ는 "중국이동통신, 차이나유니콤 등 국영 통신업체들이 화웨이 칩이 내장된 AI 서버를 대거 구매했다"면서 "장비 내 자국 칩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AI 반도체 시장은 70억달러(약 9조2500억원) 규모인데, 자국 칩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커진다.

연 팀장은 "화웨이가 AI 칩을 자국 기업에 납품하는 것은 미국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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