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삼김·소주 그리워" 몽골 핫플된 韓편의점
매운라면·어묵 꼬치 등 입맛 저격
CU·GS25, 편의점시장 '양강 구도'
편집자주 - K-편의점은 1982년 국내에 첫발을 내디딘 뒤 여러 생활편의 서비스를 흡수하며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대표 업태로 발전했다. 단순 식료품과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넘어 이제는 우체국, 은행, 약국의 역할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4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맞닥뜨린 과제가 만만치 않다. 시장의 포화, 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면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우리 편의점은 이 난제에 대한 답을 해외에서 찾고 있다.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으로 뻗어나가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점포 수도 10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밖으로는 시장을 보다 확장해야 하고, 안으로는 포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K-편의점이 이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미래 생존은 물론 한국 유통시장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범유통업계가 편의점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센베노, 엔 벗 GS25(안녕하세요, GS25입니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간 추운 날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GS25 자이승점에서 마주한 남학생은 바쁘게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고 라면 매대를 서성거렸다. 그는 김치찌개 라면과 치즈 컵라면을 골라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대학생인 보앙네메흐(19)는 “처음엔 먹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한국 라면 중에선 매운 라면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다른 편의점 점포도 마찬가지였다. 몽골의 식문화는 한국의 간장처럼 맵지 않은 양념을 주로 쓴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 몽골인들은 한국인도 매워하는 라면을 ‘최애(가장 사랑하는) 식품’으로 꼽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녔거나, 산업인력 신분으로 국내에 취업한 몽골인들이 많아진 덕분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즐기던 K-콘텐츠와 K-식품은 한국형 편의점이 몽골에서도 우뚝 서는 밑거름이 됐다.
몽골은 K-편의점 전성시대
한국 편의점 간판이 몽골을 장악하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와 GS리테일의 GS25가 전체 시장을 양분 중이다. CU는 2018년 8월 몽골 땅에 첫발을 내딛고 6년째인 현재 380여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GS25는 2021년 4월 1호점을 연 뒤, 273개까지 점포를 확대했다.
한국 편의점들이 몽골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것은 아니다. 미국계 편의점 브랜드 써클K가 CU보다 2개월 빨랐다. 2018년 4월 몽골의 ‘나노 인터내셔널’과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며 울란바토르시에 점포를 채워나갔다. 첫 출발은 순조로웠다. 미국 편의점에서 판매하던 핫도그 제품을 들여와 몽골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핫도그 때문에 써클K를 찾아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핫도그의 인기는 지속되지 못했고, CU와 GS25의 공세에 밀려 지난해 3월 CU에 점포를 매각한 뒤 시장에서 발을 뺐다. 현지에서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노민홀딩스가 ‘에코익스프레스’라는 편의점을 열었지만, 지난해 GS25에 점포를 매각했다. 박주범 BGF리테일 몽골 TFT팀장은 “CU는 현지인들이 좋아할 한국식 길거리 샌드위치나 김밥 등을 통해 젊은 층의 입맛을 공략할 만한 메뉴를 개발했다”며 “반면 써클K는 디자인과 운영방식을 기존과 똑같이 들여온 것이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GS25보다 한발 빨랐던 CU는 울란바토르 서쪽 지역에 식품 제조공장을 구축해 현지에 맞는 제품을 빠르게 공급 중이다.
K 문화 즐기는 몽골, 성공적 현지화도 한몫
한국 편의점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한국에 살아본 몽골인들이 많다는 점이 꼽힌다. 1995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에 다녀간 몽골인은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현지 임금 수준이 100만원을 넘지 않으면서 해외에서 1~3년간 돈을 벌어 몽골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당시 한국에서 먹었던 삼각김밥과 라면, 소주, 과자 등을 몽골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한국 편의점의 가장 큰 매력이다.
K-콘텐츠의 활약으로 한국 드라마에 나온 제품들을 현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주효했다. 성공적인 현지화도 한몫했다. CU와 GS25는 한국식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기보다 즉석 조리식품과 간편식을 현지화해 선보였다. 몽골식 찐빵 ‘보즈’와 만두 튀김 ‘호쇼르’, 몽골식 볶음면 ‘초이왕’ 등을 선보였으며 한국 음식인 김치를 활용한 보즈, 몽골식 김밥 등도 판매했다. 먹거리를 다양화한 덕분에 간편식과 즉석식품의 매출은 전체 편의점 매출의 40~45%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상품이 됐다.
깔끔한 편의시설과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서비스도 갖췄다. 매일 아침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편의점을 찾는 것이 '오전 일과'라는 난딘 치맥(50)씨가 꼽는 편의점의 장점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서비스다. 24시간 내내 어느 편의점을 가도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콘센트가 곳곳에 비치돼 있어 충전 서비스도 맘껏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길거리 음식보다 훨씬 맛있고 깨끗하다”며 “잠시 쉬러 많이 오는데 인사도 잘해주고 서비스도 좋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커피도 3000투그릭(1400원) 정도로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3분의 1가량 저렴해 일부러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몽골에서 맛보는 어묵꼬치, 군고구마
국내 편의점 시장에서 1, 2위인 CU와 GS25는 몽골에서도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GS25의 경우 CU보다 3년이나 늦게 진출하면서 점포 입지나 인지도가 약한 탓에 더욱 공격적인 전략을 펴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민들이 선호하는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선 것.
이 같은 전략이 가장 많이 반영된 곳이 비즈니스센터 건물에 위치한 GS25 250호점이다. 이 매장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군고구마와 어묵을 판매하는 곳이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구수한 어묵 국물 냄새다. 투명한 아크릴판 너머로 육수 안에서 팔팔 끓고 있는 어묵의 모습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몽골에 어묵이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이다. K-드라마에 익숙한 몽골 사람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추운 겨울 트럭이나 포장마차에서 줄 서서 먹는 어묵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 일부 몽골 현지 매장에서 어묵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을 보고 GS25는 몽골에도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 한국에서 어묵 기계를 공수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돈 1400원에 어묵 꼬치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는데 한국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어묵탕보다 가성비가 더 뛰어나 보였다. 회사원 바트소리(28)씨는 “아침에 어묵 한 컵씩 사서 회사를 출근한다”며 “원래 현지 편의점(에코익스프레스)이 있던 자리인데, 그때보다도 먹거리 콘셉트가 강화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GS25 관계자는 “어묵과 군고구마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20개 매장까지 늘려서 판매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관심 끌기'는 성공…아직 갈 길 먼 K-편의점
한국 편의점들이 몽골에서 급성장 중이지만, 완벽히 뿌리내리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편의점의 사업 모델인 가맹사업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탓이다. CU의 경우 가맹점 30여곳 정도를 운영 중인데 계약 조건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시작하지 못해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GS25는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가맹사업 테스트를 시작해 11곳에 가맹사업장을 열었다.
법적인 리스크도 있다. 편의점 매출의 10% 이상을 내는 주류 판매의 경우 허가제로 일부 점포에만 허락된다. 몽골 정부는 1년 단위로 주류 판매를 원하는 점포들을 신청받아 실사 후 요건에 맞는 곳만 주류 판매를 허가하고 있다. 일례로 심사 이후 새로 생긴 점포의 경우 주류를 판매하고 싶어도 다음 허가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또 새벽 시간대인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편의점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몽골 정부 내 유통 관련 법안이 미비하고 담당자들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정권이 바뀌는 등 정치 개혁이 이뤄질 경우 외국자본으로 구분되는 한국형 편의점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점포 수를 계속 늘리는 데도 고민이 있다. 몽골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울란바토르의 경우 편의점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다르한이나 에르데넷 등 제2, 3의 도시로 점포를 확대했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인구가 적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점포 확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울란바토르에선 신규 점포를 추진 중인데, 임대비용이 만만치 않아 투자 대비 이익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GS25 관계자는 “울란바토르에도 점포가 포화상태로 가고 있고, 임대료도 많이 올랐다”며 “앞으로는 간편식, 즉석 제품을 강화하고 그 외의 상품을 줄여 점포 크기를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CU 관계자는 “가맹점을 잘 정착시키고, 과거 한국의 사례처럼 마트가 편의점으로 전환해 나간다면 점포 수를 늘리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올란바토르(몽골) =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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