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文 타서 완판되겠다"던 트위지 굴욕…내수판매 포기했다

김수민 2024. 1.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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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등에서 팔던 초소형 전기차인 르노삼성 트위지. 중앙포토

불과 3년 여 전까지 ‘달리는 혁신’의 상징이던 초소형 전기차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오토바이보다 안전하면서도, 경차보다 작은 차체로 복잡한 도심이나 좁은 골목을 달리기 좋다며 주목했지만 최근 시장 전체가 ‘고사(枯死) 위기’에 빠진 것이다.


‘5분의 1’ 토막 난 초소형 전기차 시장


박경민 기자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활용해 집계한 결과, 지난해 11월까지 신규 등록된 초소형 전기차는 388대에 불과했다. 2019년 1466대, 2020년 1986대, 2021년 2458대로 성장하던 시장은 2022년(2453대) 주춤하더니, 2023년에는 아예 전년도의 5분의 1토막(성장률 -84%)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당초 초소형 전기차는 오토바이가 주도하던 배달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중량 600㎏, 너비 1.5m로 경차보다 작고 최고 속도 시속 80㎞, 최고 출력 15㎾ 이하로 성능이 제한적이지만 구매·유지비가 싸고, 친환경 차라는 점에 주목한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은 “(초소형 전기차) 규제가 혁신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2018년 규제혁신 토론회)라거나 “미래자동차 산업의 한 축”(2019년 전남 블루 이코노미 비전 선포식)이라고 치켜세우며 시장 성장을 독려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경쟁사 제품인 르노삼성의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직접 몰았다. 서철모 당시 화성시장은 ″대통령이 타셔서 완판 되겠다. 몇 년치는 못 산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시스


그러나 “대통령이 타서 완판 되겠다”(서철모 전 화성시장)는 평을 듣던 ‘트위지’(르노코리아자동차)는 일찌감치 내수 판매를 중단해버렸다. 지난 2017년 출시 때만 해도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앙증맞은 디자인과 ‘400만원 대 전기차’(보조금 포함)로 화제가 됐지만, 2021년 판매량은 302대에 그치는 등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재작년부터 국내 판매는 중단했고, 지금은 수출만 주력한다”라고 전했다.

이렇다보니 중소‧중견 기업이 대다수인 초소형 전기차 업체 대부분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강원도 전기차 산업의 핵심 기업이자 ‘포트로 탑’을 만들던 디피코는 지난해 8월부터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쎄미시스코(2000년)→에디슨EV(2001년)→스마트솔루션즈(2022)로 사명 변경을 거듭하다 초소형 전기차 사업만 따로 떼낸 스마트EV도 사실상 폐업한 상황이다. 야쿠르트 전동카트 개발업체로 잘 알려진 대창모터스도 판매가 부진한 ‘다니고3’ 등 초소형 전기차 모델보다는 1톤 화물차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수백억대 투자 약정이 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익명을 요구한 초소형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주춤하면서 200억원 상당의 투자 약정이 깨진 게 회사에 치명타가 됐다”며 “업황이 워낙 안 좋아 마땅한 대체 투자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자동차 도로’ 못 달리는 자동차 모순


업계에서는 초소형 전기차가 “인증은 자동차로 받는데, 정작 자동차 전용 도로는 못 들어가는 최악의 조건”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에어백과 ABS(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 등을 설치하느라 생산 단가는 훌쩍 뛰었다. 반면, 해외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초소형 전기차들은 상대적으로 안전 장치가 간소화된 대신 저렴하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진입 금지 규제로 정작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고, 친환경 자동차 구매 보조금도 나날이 줄다 보니 시장이 바싹 메마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초소형 전기차 쎄보모빌리티의 CEVO C/se의 판매가는 1500만원 대. 보조금이 200만~700만원대(지자체별 차이)로 지원되긴 하지만 오토바이(200만~600만원대), 레이·모닝·캐스퍼 등 경차(1000만 원대 중반)에 비해 가격 매력도가 높지 않다.

높아진 가격은 수출에도 장벽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국산 초소형 전기차 기종인 마스터 HIM 4000대를 현금 수송 차량으로 도입하려다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이때도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현지 사정에 맞게 핸들 위치를 우측으로 바꾸고 주행거리를 늘리는 등의 리뉴얼이 필요한데 자칫 리뉴얼 비용이 수익보다 더 들 수 있다는 걱정에 회사가 계약을 중도포기 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저가 중국산에 비해 생산 단가가 높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커질 상황을 우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019년 집배원들이 초소형 전기차를 타고 '2019 희망배달 집배원 안전다짐 전기차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가격 이점이 줄어든 데 비해 이용자 만족도도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용으로 도입한 초소형 전기차를 모두 중단시킨 서울 강남구의 한 햄버거 매장 직원 A씨는 “배달 기사들이 오토바이에 비해 (초소형 전기차로) 배달하기가 더 불편하다는 불평이 많아 거의 쓰이지 않았다”며 “홍보용으로만 비치해 두다가 그마저도 모두 뺐다”고 전했다.

초소형 전기차 100대를 도입하려던 우아한청년들(우아한형제들 자회사)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전기이륜차 등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초소형 전기차의 가장 큰 수요처로 꼽히던 우정사업본부도 당초 우편 배달용 이륜차 1만5000대 중 3분의 2(1만대)를 초소형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1300여대 도입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라기엔 부족하고 오토바이보다는 비싸다”며 “무엇보다 전기 이륜차에 비해서도 실용성이 떨어지는 게 치명타”라고 꼬집었다. 다만 송지용 한국스마트이모빌리티협회 사무국장은 “규제 장벽만 넘어서면 온실가스 저감, 이륜차 사고 경감 등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며 “전국 곳곳에 공장이 있는 초소형 전기차에 생산 지원금 등으로 독려하고 전기차 구매 지원금을 증대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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