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부동산 경기 정상화? 금리를 바라볼 게 아니다

2024. 1. 16.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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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130조 넘는 PF대출 뇌관
태영건설 위기 금융계로 전이 위험
정부, 업계 지원책 등 임시대응 그쳐
섣부른 금리정책은 더 큰 위기 초래

작년 연말에 전격 신청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지난주에 받아들여졌다. 앞으로 4개월 동안 정밀 실사에 들어가며, 그동안은 회사의 모든 금융부채가 동결된다. 적어도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까지는 부도가 나지 않게 되었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건설업계의 불안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책 당국의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임시방편으로만 일관하니 문제가 쌓이기만 할 뿐 해결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 없이 경제가 정상 궤도로 올라서기 힘들다.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는 금리 하락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 없이는 투자 의욕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태영건설, 지금 부도나도 이상하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태영건설은 국내 시공능력 16위의 대형 건설사로 대부분의 사업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어 빚이 많다.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부채가 4조원(부채비율 478%, 중견 건설사 중 1위)에 달해 사업을 해서 번 돈(영업이익 977억원)으로 이자(1271억원)를 다 갚지 못한다. 급기야 연말에 만기가 돌아온 480억원의 채무를 갚지 못하다가 이번에 우여곡절 끝에 워크아웃이 받아들여졌다.

이 일이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많은 건설사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 건설업계는 130조원이 넘는 PF 대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체율이 매년 두 배씩 뛸 정도로 부실 징후가 농후하다. 잘 알려진 대로 PF 방식은 담보물이 아니라 사업계획을 기초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위험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이를 취급할 때 건설회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하는데, 태영건설의 경우 이 규모가 9조원을 넘는다. 지급보증은 우발채무로서 재무제표에 부채로 잡히지 않는데, 올해 만기가 닥치는 것만 3조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태영건설은 지금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부도가 나는 것보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것이 백번 유리하다. 워크아웃은 경영권이 보장되는 가운데 금융 채무가 동결되는 데다 잘하면 신규 자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난처하다. 이래도 저래도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경우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전 업계가 어려움에 빠진 구조적인 상황에서는 언감생심이다.

당연히 워크아웃은 건설사에 매우 유리


그런데도 이번에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개시된 것은 대형 건설사로서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과 시장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책 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워크아웃 대신 바로 법정관리로 간다면 수많은 협력사가 연쇄 부도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부동산 활황기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으면 침체기에는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시장원칙이다. 이를 통해 부실 사업은 정리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은 더욱 번창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부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정책을 간파한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에 제공키로 했던 자금을 지주회사로 돌리는 배짱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모습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제는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가 이런 태영건설의 행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영건설 사례가 선례로 작용해 다음에 어떤 건설사가 부도 위험에 빠지더라도 형평성 운운하며 자기 이익만을 고집할 것이 뻔하다.

이에 부담을 느끼는 정부는 개별적인 워크아웃보다는 건설업계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이 난관을 돌파하고 싶어 한다. 당장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결정 전날인 1월 10일에 재건축·재개발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규제 완화와 함께 건설회사의 골칫거리인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털 수 있는 세제 혜택을 발표했다. 수년이 걸릴 수요공급을 앞당겨 업계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은 후일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년 추석 전에 발표한 9·26 주택공급 활성화 대책도 같은 맥락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공적기관에 대해 건설사 PF 대출 보증을 확대토록 한 조치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확대시킨 것과 다름없다. 이래서는 지원이 아니라 불안만 키우는 꼴이 된다. 당장 건설업의 손실이 금융계로 전이될 위험이 커졌다. PF 대출 부실로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는 일부 금융회사는 적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금융권에서는 과거 PF 대출 부실로 큰 곤욕을 치렀던 저축은행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업계나 금융권, 심지어 정부조차도 금리 향방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고금리 현상이 해소된다면 이 모든 문제가 봄철 눈 녹듯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르면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만큼 한국은행도 정책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전망의 확산을 막으려는 듯 지난주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정책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크다며 적어도 앞으로 6개월 이상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아 버렸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에 비해 2% 포인트나 낮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미국보다 빨리,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 경기가 급락해 긴급 대응에 나선 경우일 가능성이 큰 만큼 부동산 경기는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부의 임기응변식 대처 문제 키울 뿐

건설업은 전형적인 경기후행 산업이다. 한번 꺾인 부동산 투자는 웬만큼 경기가 개선되지 않고는 회복하기 힘들다. 더구나 현재 한국은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등의 구조적 요인으로 부동산에 우호적인 상황도 아니다. 사실 시장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걸맞지 않게 올라 버린 부동산 가격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가 아무리 건설업 지원 대책을 쏟아내도 저만큼 올라 버린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달도 차면 기우는데, 높게 올라간 가격은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도록 금리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긴요한 국면이라 하겠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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