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무엇을 위한 물갈이 공천인가
벌써 1월의 절반이나 지나가 버렸지만, 새해가 기다려졌던 건 지난해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새로운 출발은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설렘을 준다.
올해 정치적으로 그런 변화의 기대감을 줄 수 있는 건 4월로 예정된 22대 총선이다. 21대 국회는 우리 의회 역사상 모든 면에서 가히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무능했고 저질이었다. 돌이켜보면 21대 국회는 그 구성부터 엉망이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선거가 치러지면서 많은 제약 속에서 유권자들은 투표를 해야 했고, 그 이전 날치기로 처리된 선거법 여파로 유권자를 기만한 위성정당도 생겨났다. 국회 개원 중에도 차이와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역할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오히려 정치가 분열과 적대감을 부추겼다. 막말, 혐오 발언, 근거 없는 음모론, 의원 개인의 도덕성 문제 등 정치의 격조와 품위라는 면에서도 21대 국회는 최악이었다. 그래서 다가올 선거를 통해 ‘싹 다 갈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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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능과 저질 얼룩졌던 21대 국회
우리편 여부가 공천의 기준 된 탓
지금도 거대 양당 친윤·친명 부상
오만함이 제3세력에 기회 될 수도
」
표에 예민한 정치권이 국민의 이런 정서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주요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물갈이’를 해 왔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원 교체율은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대단히 높은 편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58.2%가 불출마든 낙천이든 낙선이든 재선에 실패했다. 21대 국회의 초선의원의 비율도 50.3%로 절반을 넘었다. 절반이 넘는 새 인물로 21대 국회가 채워진 셈이다. 이처럼 신인들로 대폭 교체되었지만 정치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 ‘새롭다’는 인물들이 반드시 이전의 의원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유능하거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이들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된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할 공적 책임감과 역량, 도덕성을 갖췄느냐보다 이념적 혹은 정파적으로 ‘찐 우리 편’인지, ‘잘 싸울 수 있는지’ 여부가 그 당시 공천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나타난 유독 흥미로운 점은 초선의원들의 움직임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처럼회’로 대표되는 일부 초선의원들이 강성 지지층과 이재명 대표의 지원 속에서 당내 강경 노선을 주도해 왔다. 사실 의회 정치의 전통이 깊은 국가에서라면 초선의원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열린우리당 시절 “선배 의원들이 군기를 잡겠다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당시 한 초선의원의 발언이 상징하듯, 그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다선의원들의 권위는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와 함께 그들의 경험과 정치력도 모두 무의미해졌다. 초선의원의 패기가 노련한 다선의원의 경륜에 의해 조정되지 못한 채, 이들은 정치적으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었다.
국민의힘은 4년 전 미래통합당이던 시절 공천관리위원장의 중도 사퇴와 공천 번복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와중에 국회에 들어온 초선의원들은 이준석 파동이나 김기현 파동 때 보여준 대로, 변변하게 옳은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당 지도부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존재들이었다.
이처럼 21대 국회를 회고해보면, 다가올 총선을 통해 현역의원들을 ‘왕창 갈아버린다’고 해도 그 이후의 정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진행되는 거대 양당의 공천 흐름을 보면 실제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당에서는 ‘친윤’ 세력이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실 인사들이 줄지어 여권 텃밭에서 출마 준비 중이고, 전직은 물론 현직 검사들의 출마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더 노골적이다. 당 후보자를 검증한다고 하지만 비명계 의원들은 공천 탈락되는 반면, 친명계 의원들은 뇌물이나 선거 개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심지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공천 적합의 판정을 받았다. 이런 추세라면 4월 총선은 ‘친윤’ 후보 대 ‘친명’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친명’이라는 말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친윤’ 역시 ‘대통령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갈이’라는 명분은 향후 예상되는 정치적 대립과 격돌을 대비한 친윤, 친명 각 진영의 투사 혹은 원내 홍위병 충원을 위한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 친명, 친윤 의원으로 가득한 국회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라면 22대 국회가 구성된다고 해도 최악이라는 21대 국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오만하게 당내 공천을 이끌어 가는 건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 상대 당이 싫다면 우리밖에 찍을 데가 더 있겠느냐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거대 정당들의 이런 오만함이, 아직은 미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3세력의 도전에 관심의 눈길을 한번 돌리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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