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주의 퍼스펙티브] 높아진 대만해협 파도…한국이 양안 평화 중재자 될 수도
대만 총통 선거, 안보·경제 영향은
그는 2017년에 자신을 ‘대만 독립에 힘쓰는 일꾼’(務實台獨工作者)로 지칭했지만, 지난 8년간 대만을 이끌어온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양안 관계 현상유지’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이번 선거 기간에 천명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라이 당선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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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독립파 당선에 중국 격앙
군사·경제 압력 한층 강화할 듯
대만 무력충돌 땐 한반도 격랑
양측에 ‘현상 유지’ 목소리 내야
」
대륙엔 온건파 목소리 거의 실종
중국 정부의 눈에 라이 당선자는 차이 총통보다 더 강경한 반중 독립주의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도 내심 불안하게 보는 것 같다. 라이 당선자가 선거 전 마지막 TV토론에서 “중화민국 헌법은 대만의 재난”이라고 대중 강경 발언을 한 때문이었다. 만일 대만 정부가 법을 만들어 독립을 추구할 경우 중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red line)’을 넘게 된다.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정상 회담 이후 미·중은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채널을 착착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 문제에 대한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정부 입장은 극도로 강경하다.
필자는 최근까지 대만에 머물면서 현지의 여러 전문가를 만났다. 그들은 선거 이후 양안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했다. 양안 전략대화에 깊이 관여했던 루예중(盧業中) 국립정치대학 교수에 따르면 2019년 무렵부터 중국 본토에서 온건파의 목소리가 거의 사라졌다. 라이룬야오(賴潤瑤) 중앙연구원 박사는 중국에서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기만하고 남도 속임)’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 관료와 전문가들이 최고 지도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가는 ‘과잉 충성 리스크’를 지적한 것이다.
대만 독립 노선의 민진당이 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 대만에 무역 제재뿐 아니라 군사적 압력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이미 주권 독립 국가”라는 라이 당선자가 오는 5월 20일 제16대 총통에 취임하면 “통일을 위해선 무력도 불사한다”는 시 주석과 충돌이 불가피할 듯하다.
현 총통보다 더 강경한 정책 예상
타이베이(臺北)현의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라이 당선자는 최고 명문 대만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으로, 입법위원(국회의원)과 타이난(臺南) 시장, 행정원장(총리에 해당) 등을 역임했다. 내치에는 밝지만, 국제 문제에는 생소한 편이라 외치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샤오메이친(蕭美琴·53·여) 주미 대만경제문화대표부 대표를 부총통 후보로 영입했다. 민진당 파벌 정치 실상에 밝은 대만의 한 싱크탱크 인사는 신임 총통이 전임 총통과 차별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4년 전 민진당 총통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라이 당선자와 차이 총통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라이 당선자는 차이 총통의 부하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인사들을 등용하려 하지만 인재 풀이 다소 빈약하다는 평이 있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강경파의 지지를 받아온 라이 당선자가 발탁할 외교 실무자들은 차이 총통 때보다 더 강경하고 도전적인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수 전문가는 단기간에 양안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렇지만 리스크를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향후 2~3년 안에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가능성을 5%로 전망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 리스크는 앞으로 일상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억제 의지와 능력을 분석한 뒤 무력 사용 여부와 방법 및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현상 유지 계속될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원 중이다. 미국이 동시에 중국발(또는 북한발) 동아시아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중국이 판단하면 대만을 무력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미국보다 국력이 열세였던 마오쩌둥 시대에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대약진운동(1958~62년)의 혼란 와중에도 1962년 인도를 침공했던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의 강력한 억제 때문에 중국이 현상을 유지할 것이란 믿음에 집착하면 치명적 오판을 범할 수도 있다.
통일을 포함한 대만의 미래는 민주·자결 원칙에 따라 대만인들이 선택할 사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힘을 고려할 때 대만은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대만 문제는 이제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글로벌 이슈다. 한국의 국익과도 불가분의 관계다. 대만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무력에 의해 전복된다면 세계 질서는 격랑으로 요동치고 한국의 번영과 안보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양안 전면전 땐 한국도 큰 손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약 10조 달러의 천문학적 손실이 예상된다. 무역 의존도 약 75%로 세계 2위인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리스크로 큰 손실을 볼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무역 물동량의 43%가 대만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은 수출입 화물의 99%를 선박으로 운송하고 있다.
양안 충돌의 최악 시나리오인 중국의 대만 본섬 공격 또는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 전구뿐 아니라 북부 전구 일부도 참전할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 경우 서해와 남해 일부 해상에서도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군과 중국군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앞바다가 미·중 전쟁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한 것은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안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국 정부는 당당하면서도 정교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억제(Deterrence)와 보장(Assurance)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나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은 이웃 우방들과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하나의 중국’에 기초한 평화 통일을 위한 과정이자 수단으로서 대만의 방어적 군사력 유지는 불가피하다. 또 대만의 경제적 번영은 국방력의 근본이다. 따라서 대만의 신남향 정책을 비롯한 자유무역에 국제사회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 경제가 고사하면 대만의 대중 억제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불안감 해소 대책도 필요
동시에 중국의 불안감을 해소할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대만의 독립 추구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서도 한국은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령 대만 독립을 향한 수순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국호 변경이나 중화민국 국가 폐지 등에 한국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협상에 의한 현상 변경’, 즉 평화 통일 옵션이 여전히 존재함을 중국 측에 설득하고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대만 문제에 입장을 천명할 수 있는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명분을 갖고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 편에 서서 침공해 한국인은 크나큰 희생을 치렀다. 한국은 중국에 “참담하고 허욕에 가득 찬 무력 통일 시도는 위험하다”고 경고할 수 있는 도덕적 위치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한 이웃으로서 대만에 당분간 현상을 유지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 분단의 아픔과 함께 민주주의·시장경제 등 가치·제도를 공유하는 한국인은 대만인과 동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국민당 소속으로 2008~16년 집권한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은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 정부가 대만을 돕는 최고의 방법은 대만과 본토가 평화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만대학 황민화(黃旻華) 교수는 양안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트랙 투’ 대화가 거의 단절됐다며 우려했다. 그는 대만이나 중국 본토에서 양측 인사의 접촉은 어려울 거라면서 대안으로 제3국에서 공신력 있는 민간기관이 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옵션을 언급했다. 한국도 후보지가 될 수 있다. 세계의 중심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증대된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당당하고 정교한 국가전략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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