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소녀들이 부른 ‘유디트의 승리’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의 본래 직업은 가톨릭 사제였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 사제의 중요한 임무인 미사를 집전할 수 없었다. 대신 피에타 고아원 부속 음악원의 교사로 일했다. 피에타 음악원은 고아나 사생아 출신의 소녀들을 데려다가 국비로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비발디가 피에타 음악원 소녀들을 위해 작곡한 곡 중에 ‘유디트의 승리’라는 오라토리오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여인 유디트가 조국을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벤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는 남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소녀들을 위해 작곡했기 때문에 배역은 모두 여성들이 맡도록 되어 있다.
‘유디트의 승리’는 아시리아 군인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내용상으로는 남자군인들이 불러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이 부른다. 여성이 남자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반감되는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비발디는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첫 곡 아시리아 군인들의 합창은 힘찬 팀파니 전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트럼펫이 시종일관 합창과 함께 화려한 악구를 연주하는데, 이것이 소녀들의 목소리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디트의 승리’ 전곡을 들어보면 여성의 목소리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현된 비발디의 창조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음악을 듣다 보면 소녀들을 위해 작곡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다.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비발디를 ‘같은 곡을 1000개씩이나 써 갈긴 작곡가’라고 혹평했지만, ‘유디트의 승리’를 들어보면 그가 시대를 앞서가는 작곡가였다는 것, 인간의 감성을 소중하게 생각한 휴머니스트였다는 것, 그리고 한계 속에서 오히려 엄청난 창조력을 발휘한 진정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발디는 그렇게 놀라운 음악의 힘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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