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바꾸면 정말 더 나은 세상이 될까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 겨울왕국 같은 모스크바, 애끓는 사랑과 이별, 겨울 이맘때면 영화 ‘닥터 지바고’가 생각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 출간한 원작소설은 라라의 사랑만이 아닌, 러시아 제정 말기와 레닌혁명 후 혁명군과 자유주의 백군의 처참했던 적백내전 이야기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혁명 지도자가 된 라라의 남편 파샤는 그 신념이 만들어낸 세상을 보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혁명과 관계없는 주인공은 의사라는 이유로 납치되고, 적백군을 오가며 진료해야 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시대와 어긋나는 운명으로 파괴되는 가슴 아픈 서사시다.
바꾸면 더 나은 세상이 된다는 ‘순수한’ 생각은 지난 세기 동안의 화두였다. 미래는 현재보다 나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떤 것은 나아졌고, 어떤 것은 추락했다. 요즘 화두인 의료 공공화와 공공 의대는 러시아·중국 등에서 이미 시행했으나 예상과 달리 의료 수준은 추락하고 의료비는 폭증했다. 우수한 의사는 외국으로 나가고, 환자들은 비보험 사립병원을 선호하고, 중증환자는 외국에서 치료받는다.
의료는 하나의 국방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의 경제성장은 의료수준 발달 덕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질병·사망으로 인한 중단없이 정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음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의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국민 세금이 장기간 들어간다. 의사가 많은 나라가 의료가 좋은 나라와 같은 뜻이 아닐 수 있다. 의사를 늘리고 싶다면 전국 방방곡곡에 신설 공공 의대가 아닌 오랜 세월 검증된 ‘교육 가능한’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게 낫지 않을까. 최고의 의사를 만들어 지방 분원으로 파견하는 시스템을 만든 고 정주영 회장의 선견은 지금 지방 의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긴 호흡으로 준비하면 좋겠다. 세대를 넘어 백년대계가 되도록. ‘더 잘하는 병원’에 가고 싶다는 바람은 동서고금 인간의 본성이다. 의료가 무너지면 국민이 쓰러진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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