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히 갚으면 호구”… ‘신용 대사면’에 부글부글

김지훈 2024. 1.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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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최근 몇 년간 대출금 연체 이력을 삭제해주기로 결정했다.

본래 차주가 3개월 이상 대출을 연체할 경우 신용정보원은 이 기록을 최장 1년간 보유·공유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는 이를 토대로 5년간 해당 차주의 금융 신용도를 평가한다.

2022년 7월 금융위원회는 투자 실패 등에 시달리는 저신용 청년의 채무 이자 부담을 최대 50% 경감해주고 연체이자를 전액 감면해주는 '청년 특례채무조정'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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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3년간 대출연체 이력 삭제
빚 갚으려 고군분투한 서민층 허탈
“갚으면 손해” 모럴 해저드 확산
국민일보 DB


정부가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최근 몇 년간 대출금 연체 이력을 삭제해주기로 결정했다. 없는 살림에도 빚을 성실히 갚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차주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코인 빚 탕감’ 기조에 이어 선심성 금융정책이 이어지며 ‘갚는 사람이 바보’라는 자조가 확산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업권 협회·중앙회, 신용정보원 및 12개 신용정보회사(CB)는 전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 11일 국민의힘과 정부가 민당정협의회에서 발표한 ‘신용 대사면’의 후속 조치다.

이번 협약으로 2021년 9월 1일부터 2024년 1월 31일까지 2000만원 이하 연체금을 오는 5월 31일까지 전액 상환하는 경우 연체 이력 정보의 상호 간 공유·활용이 제한된다. 한 마디로 지난 3년여간 발생한 연체 이력을 전부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신용 사면은 2021년 8월 이후 2년5개월 만이다.

2000만원이라는 기준은 신용정보원과 CB사에 등록된 연체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 신용정보원은 원금을, CB사는 원리금을 기준으로 대출금을 책정한다.

금융권은 이번 신용 대사면으로 개인 대출자 기준 약 290만명이 연체이력 삭제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9점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정부의 저금리 대환대출 혜택 대상에 포함되게 된다. 25만명은 신규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고, 15만명에게는 신용카드 발급 기회가 열린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대출금을 연체한 소상공인 등의 빚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지만 ‘빚을 갚지 않아도 결국엔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믿음을 준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대출금을 성실히 납부해온 이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실패해 빚을 지게 된 이모(29)씨는 “어떻게든 돈을 제때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건설 현장에까지 나가며 돈을 벌었는데, 이제 와서 연체 이력을 없던 일로 해주겠다니 심란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본래 차주가 3개월 이상 대출을 연체할 경우 신용정보원은 이 기록을 최장 1년간 보유·공유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는 이를 토대로 5년간 해당 차주의 금융 신용도를 평가한다. 3개월 이상 연체 차주는 사실상 향후 5년간 금융거래에 큰 제약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씨 사례처럼 사업을 이어가야 하는 차주들은 가족에게서 돈을 빌리거나 건설현장에서 잡부 일을 하면서까지 원리금을 납부하기 위해 애써 왔다.

특히 이번 신용 대사면이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정책에 대해 “연체자 중 오래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상환 조건까지 내세운 만큼 경제학적으로는 충분히 할 만한 정책”이라면서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은 든다”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윤석열정부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7월 금융위원회는 투자 실패 등에 시달리는 저신용 청년의 채무 이자 부담을 최대 50% 경감해주고 연체이자를 전액 감면해주는 ‘청년 특례채무조정’을 선보였다. 서울회생법원은 가상화폐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금을 개인회생 변제금에 반영해주기로 하며 ‘코인투자 실패로 인한 회생’ 문턱을 대폭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조치는 예외적인 경제상황에서 2000만원 이하 소액채무를 연체한 서민·소상공인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건전한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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