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아미와 늙은 군인의 노래 [김선걸 칼럼]
몇몇 언론에 실린 ‘시니어 아미(Senior Army)’ 기사를 읽었다. 57세부터 75세까지 평균 연령 63세인 은퇴 세대들이 자발적으로 예비군 민간단체를 만들어 훈련까지 한다는 내용이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가 매번 얘기하던 거랑 똑같네.” 필자도 사석에서 동료나 친구들에게 비슷한 아이디어를 말하고는 했다.
출산율 급락에 병력 자원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의 군복무 기간을 늘릴 수는 없다. 하루가 황금같이 아까운 청년기인데.
그래서 은퇴한 아버지, 삼촌들이 국방의 한 축을 담당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누군가는 벌써 시작한 것이다. 기사를 보니 이 노인들은 일찌감치 구상하고 벌써 행동에 옮겼다. 국가가 정식 군대로 인정을 안 해주니 자기들끼리 돈을 각출해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개발 시대 베이비부머들의 기동력과 추진력을 실감케 한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돼,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대학 다닐 때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듣고 불렀다. 늙은 군인의 회한과 아쉬움 속에 애국심과 사명감도 느껴지는 절묘한 가사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대목에선 흘려보낸 청춘을 절절하게 그리워한다. 그런데 ‘시니어 아미’ 노인들은 두 번째 군대를 가겠다고 자기 돈 내고 기꺼이 자원한 것이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군생활의 보람과 동시에 아쉬움을 노래한다면 ‘시니어 아미’는 미래를 위해 실용적인 실천에 나선 셈이다.
둘의 본질은 똑같다. 절절한 애국심.
물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도 가끔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에 식은땀 흘리며 깨어나는데 자기는 절대 못한다는 거다. 강제할 수는 없다. 여하튼 연평균 100만명씩 태어났던 베이비부머세대가 이제 많이들 은퇴했다. 등산 다니며 소일하거나 소득 절벽 때문에 생활고를 겪기도 한다. 2025년에는 병장 월급 200만원 시대를 연다는데 부대에서 밥 주고 재워주니 의욕 있는 노년들을 모아볼 만하다. 뭣보다 요즘 60대는 건강 나이로 예전 40대에 맞먹는다.
특히 ‘시니어 아미’가 가능한 이유는 기술의 발전이다. 이미 경기도 연천 한 전방 사단에선 일반전초(GOP)에 데이터 200만건을 학습한 AI가 설치돼 철책을 지키게 된다. 여기에 ‘로봇 강국’인 우리나라가 집중 투자하면 병참, 수송 등 인력의 상당 부분을 AI와 결합된 시스템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청년 세대들은 전후방의 첨단 기술 관련 업무에 배치해 제대 후에 도움 될 경력을 쌓게 할 수 있다. 실제 이스라엘에선 이 같은 군대 경력이 미국 최고 학부인 MIT나 스탠퍼드대 졸업증에 맞먹게 평가받는다고 한다.
지난해 하마스에 공격당한 후 이스라엘은 4~5일 만에 36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했다. 95세 노병도 있었고 미국서 곧바로 날아온 20대 명문대생도 수두룩했다. 인구 절벽을 앞둔 한국은 이스라엘의 국방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부터 은퇴 후 참여를 약속하면 어떤가.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기업 경영자 등도 관심 가질 것이다. 돈 없고 백 없는 흙수저만 군대 간다는 인식을 부모 세대가 바꿀 수 있다.
헬라어로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된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연대기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주관적인 기회를 뜻한다. ‘시니어 아미’는 크로노스적으로는 노년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높은 뜻의 카이로스를 잡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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