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를 ETF처럼…그러면 살아날까
연내 공모펀드가 거래소에 상장지수펀드(ETF)처럼 상장돼 거래된다. 투자 비용을 절감하고 거래 편의성을 높여 고사 직전인 공모펀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공모펀드 시장 부진이 거래 편의성에서 비롯됐다는 인식부터 근시안적이라는 뒷말이 따른다.
혁신 상품 생태계 조성
최근 금융위원회는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일반 공모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판매 수수료·보수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하면서 주식처럼 간편하게 사고팔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된다. 공모펀드를 ETF처럼 매매할 수 있게 유동성공급자(LP)를 통한 유동성 공급도 이뤄진다. 금융당국은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연내 상장, 매매를 추진한 뒤 2024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거쳐 법제화를 추진한다.
은행과 증권사 등 공모펀드 판매사가 투자자 계좌에서 판매 보수를 직접 떼도록 구조를 바꿔 가격 경쟁도 촉진한다. 이를 위해 판매사가 펀드 재산 내에서 판매 보수를 지급받지 않고 투자자 입출금 계좌에서 직접 판매 보수를 수취하는 ‘제로 클래스(가칭)’를 신설한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판매 보수는 판매사가 아닌 운용사가 사전에 일률적으로 정해 펀드 재산에서 직접 뗀다. 이 때문에 투자자는 자신이 부담하는 판매 보수 성격을 명확히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드셌다. 이런 구조는 판매사가 수익률 좋은 펀드보다 판매 보수가 높은 상품을 투자자에게 권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판매사를 거치는 중간 유통 단계가 없어지는 만큼 판매 보수는 ETF 수준으로 대폭 절감될 전망이다.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생태계 조성에도 나선다. 혁신적인 ETF 또는 상장지수증권(ETN) 상품의 경우 유사 상품 상장을 일정 기간(6개월) 제한하는 ‘신상품 보호 제도’ 개편이 이뤄진다. 내실 있는 제도 운영을 위해 현 정량평가 방식을 정성평가 방식으로 바꾸고 거래소에 ‘신상품심의회’를 설치·운영한다.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최근 펀드 시장은 ETF가 헤게모니를 거머쥐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다만, 우리 공모펀드 시장은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와 비교해도 규모는 물론 상품 다양성 질적 요소에서 뒤처진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패시브 펀드 급성장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도 나타난다. 패시브 펀드는 시가총액 비중에 맞춰 기계적으로 관련 종목을 담는다. 이 과정에서 ‘눈덩이 굴리듯’ 수급이 따라붙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패낳괴(패시브가 낳은 괴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패시브 급성장의 더 큰 문제는 자본 시장 ‘클로짓 인덱싱(closet indexing)’ 현상 심화다. 이는 자본 시장 전체가 ETF처럼 지수와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결국 펀드매니저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전체 시장 지수와 비슷한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펀드 시장의 다양성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 물꼬 돌려야
공모펀드 상장을 뼈대로 한 금융당국 방안을 두고 ‘운용사 간 경쟁이 치열해져 투자자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펀드의 단타 거래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펀드 거래가 쉬워지면서 개인 투자자 펀드 단타가 성행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사고팔기 쉽게 한다고 고사 직전 공모펀드 시장이 기사회생할 것이라는 진단부터 안일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공모펀드 시장에 부활의 물꼬를 트는 것은 간단치 않다. 운용사, 투자자, 규제 개편 등 복합적인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
펀드에 장기 투자 문화를 확립하는 게 중장기 과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펀드 투자자의 절반 이상은 투자 기간이 2년 미만이다.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적립식 펀드는 외면받고 레버리지 ETF 등 패시브 단타 상품이 득세한다. 이런 세태에는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 책임이 크다. 국내 자산운용사 해외투자담당 펀드매니저는 “몇 년 전부터 PB들 성과 지표에 고객 수익률이 포함됐는데 당초 취지는 ‘고객이 돈을 못 버는데 PB들만 수수료 수익을 버는 것은 모럴 해저드’라는 이유였다”며 “이렇게 바뀐 이후 수익률이 조금만 오르면 환매를 권하는 경우가 허다해 어지간한 공모펀드는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는데도 계속 환매가 들어와 펀드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퇴직연금 물꼬를 주식 시장으로 유도하는 것에도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 펀드에 일정 수준의 장기 투자 자금이 확보되면서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퇴직연금에 몰린 대규모 자금이 증시 안전판이 되고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도 시장의 방패막이가 됐다.
투자 한도를 묶어둔 ‘10% 룰’을 손보는 것도 해묵은 숙제다. 자본시장법은 공모펀드가 설정액 총액의 10% 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한다. 한 종목에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막고 투자 위험을 분산하려는 의도에서다. 다만, 운용 일선에서 이 조항을 지키려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친다. 가령, HBM 시장 확대로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훌쩍 돌파해 전체 코스피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돌파했다고 치자. 공모펀드는 한 종목 투자 비중이 최대 10%를 넘기면 안 돼 이 비율 아래서 투자 한도가 묶인다.
‘10% 룰’로 불리는 공모펀드 동일 종목 투자 한도는 1990년대 등장한 개념이다. 10% 룰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불거졌지만 당국 태도는 완강했고 종종 펀드 사고가 터지자 관련 논의가 무위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사들이 실력을 키워 안정적인 수익률로 고객 신뢰를 얻는 스타 펀드를 등장시켜야 한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기업 분석과 주식 가치 평가를 포함한 리서치 강화, 사모펀드 시장으로 이탈하고 있는 유능한 인력의 재확보, 상품과 운용 전략 설계 능력 제고 등이 절실하다”며 “특히 규모의 경제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대형사가 액티브 공모펀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장을 선도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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