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골수 줄기세포 치료’ 애매한 신의료술 고시, 혼란 불렀다
신의료기술 신청한 업체 반발
줄기세포·흡인 농축물 혼용한
신의료기술 고시 문구가 불씨
지난해 7월 무릎 골관절염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에 대한 정부의 신의료기술 고시 이후 의료계와 관련 업계에 예상치 못한 혼탁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기기 업체가 검증되지 않은 기구를 줄기세포 추출용이라고 과대·편법 광고를 하거나 일부 병·의원이 이에 편승하다 당국에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애매한 신의료기술 고시 내용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신의료기술 평가를 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과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문제 된 고시 내용에서 ‘줄기세포’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재고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대로 시행될 경우 이미 줄기세포 치료를 내세우며 과열된 개원가에 또 다른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 흡인 농축물 관절강 내 주사(복지부 고시 제2023-128호)’가 관절 통증 완화와 기능 개선에 안전하고 유효한 신의료기술(비급여 등재)로 발표되면서 무릎 관절염 환자들의 줄기세포 주사 치료 수요가 급증했다. 전국의 정형외과 병·의원, 요양병원, 심지어 한방병원(의사 고용)까지 골수 줄기세포 주사 시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기술은 환자 자신의 장골능(엉치뼈)에서 채취한 골수를 원심분리하고 농축된 줄기세포를 무릎 관절강 안에 주사하는 방식이다. 사용 대상은 ICRS(연골 손상 정도 국제 표준 기준) 3~4등급 또는 KL(무릎 골관절염 진단 기준) 2~3등급에 해당하는 무릎 관절염 환자로 연령 제한이 없다. 수술하지 않는 치료법인 데다, 실손보험까지 적용받을 수 있어 환자들이 선호한다.
문제는 ‘신의료기술 호재’에 일부 의료기기 업체들이 골수 줄기세포 추출용으로 허가받지 않은 저가의 기구를 줄기세포 치료용으로 포장해 광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 제품을 납품받는 병·의원들도 환자 유치에 이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양질의 골수 줄기세포 분리농축 시스템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곳은 이번에 신의료기술을 신청한 M사뿐이다. 나머지 업체들은 줄기세포라는 명시적 표시 없이, 일반 원심분리기를 사용해 ‘골수세포층’ 혹은 ‘골수세포성분’ 추출 기구로 승인받았다.
M사 관계자는 “식약처 의료기기 규정에 따르면 새로운 골수 처리용 기구의 사용 목적·방법, 작용 원리에 ‘골수 줄기세포’를 표방하고자 하는 경우 해당 성분의 분리 확인 등에 관한 근거 자료 제출이 필요하며, 이미 허가된 제품과의 동등성 평가(효과가 동일하다는 평가) 혹은 신청하는 제품을 단독 평가한 자료(임상시험 자료 등)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된 기존 제품과 동등성 평가를 통해 골수 줄기세포 추출 기구로 허가받은 것은 우리 제품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줄기세포 포함 여부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은 “신의료기술 고시에 ‘골수 줄기세포’라는 문구도 있지만 ‘골수 흡인 농축물’이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즉 줄기세포 추출용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해당 고시를 보면 기술명에는 포괄적 개념인 ‘골수 흡인 농축물’, 사용 방법에는 ‘환자의 장골능에서 채취한 자가 골수를 원심분리하고 농축된 골수 줄기세포를~’로 혼용돼 있다.
결국 명확하지 못한 고시 내용으로 인해 혼란이 초래됐으며 업체들의 과대·편법 판촉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실제 A업체는 홈페이지와 판매 사이트에 자사 장비를 ‘자가 골수 줄기세포 농축 키트’로 홍보했다가 ‘허가사항 외 과대광고’로 민원이 제기되자 관할 관청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해당 문구를 ‘골수농축세포’로 수정했다. B업체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판촉하다 지방 식약청으로부터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행정지도를 받았다.
고시의 사용 방법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병원마다 시술 용량 등이 상이한 점도 문제다. 일부 병원은 50㎖ 골수 추출 후 분리 농축해 1~3㎖의 농축액을 시술에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신의료기술 평가 시 참고한 연구논문에는 60㎖ 골수 추출 후 분리 농축해 7~10㎖를 주사해야 유효함이 확인됐다. 대학병원 교수를 지낸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줄기세포가 들어있는지,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이 어려운 단순 골수 추출물 등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 재료를 사용하면서 줄기세포 시술인 양 홍보하면 피해는 결국 환자가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혼란이 가중되자 복지부는 지난달 26일부터 전자정부누리집(입법·행정예고 전자공청회)’에 해당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결과 고시 일부 개정안을 슬쩍 올려 16일까지 의견수렴을 받고 있다. 당초 고시의 사용 방법에 표시된 ‘농축된 골수 줄기세포’ 단어를 ‘농축된 골수 흡인물’로 수정했다. 이에 대해 NECA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놓친 부분이 있었다”고 실수를 인정하고 “사용 방법에 골수 줄기세포란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골수 흡인 농축물로 바꿨다”고 해명했다.
당초 골수 줄기세포로 신의료기술을 신청한 M사는 즉각 반발했다. M사는 “식약처 규정에 의거해 동등성 평가를 받은 의료기기로 획득한 줄기세포로 골관절염 신의료기술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의료기술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복지부에 제출했다. 또 “해당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유효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의료기기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국민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건강에 큰 위험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정형외과학회 차기 이사장인 한승범 고려대안암병원장은 “골수 줄기세포 치료의 신의료기술 등재 이후 개원가에서 혼탁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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