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북한만 믿고 'GP 불능화' 부실검증"…총선 앞 이슈 터지나
9·19 남북 군사합의 후속 조치로 이뤄진 북한의 감시초소(GP) 철거를 놓고 문재인 정부가 불능화에 대한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한 정황이 포착돼 국방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다. 땅굴처럼 생긴 북한 GP의 특성을 고려해 더욱 철저한 불능화 검증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대북 유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눈 가리고 아웅’ 식 검증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안보 관련 정책 결정 사안이 또다시 감사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15일 군 당국에 따르면 철거된 북한 GP의 불능화 여부와 관련, 당시 현장 검증단이 생산한 보고서 등 문서를 근거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이를 토대로 추후 국방부 감사관실의 감사를 진행할지, 감사원에 감사 의뢰를 할지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관계자들에 대한 직권남용 등 혐의점이 의심될 경우 수사의뢰로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혹의 핵심은 북한의 GP 불능화 조치 미비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가 부당하게 무시됐는지 여부다. 군 내부에선 이때 77명으로 이뤄진 현장 검증단 중 일부가 “북한 GP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하지만 해당 의견이 묵살된 채 무리하게 불능화라는 최종 결론이 내려지고 언론 발표까지 이뤄졌다는 의혹이 있어서 검증, 결론, 언론 공표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11월 철거된 북한 GP를 둘러싼 논란이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다시 불거진 데는 최근 북한의 GP 복원 작업이 예상보다 빠르고 순조롭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9·19 군사합의 파기를 발표하며 철거한 GP 11곳에 대한 복구 작업에 돌입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GP를 파괴하면서 지하시설은 손을 안 댄 것 같다”며 “당시 다 파괴됐다면 지금쯤 지하 공사를 다시 해야 하지만 공사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지하시설이 보존돼 있어 GP를 손쉽게 재무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다.
북한 GP는 겉보기엔 단순한 감시탑처럼 보이지만, 아래에는 약 100m 정도 길이의 공간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감시탑에서 약 10m 아래엔 1.2m 높이의 갱도 입구가 2~3중 철문으로 설치돼 있고, 이 안에 생활관, 교환실, 탄약고 등 여러 방이 배치돼 있는 구조다.
지하시설의 견고함도 눈여겨 볼 만하다. 암반지대에 지어진 데다, 각 방을 나누는 콘크리트 벽의 두께가 최대 50㎝에 달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북한 GP의 불능화를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은 그동안 군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2018년 12월 현장 검증단의 조사를 거쳐 “GP가 폭파돼 불능화 상태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뒤에도 의심은 여전했다.
당시 군 당국은 검증단이 철거 GP의 파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문재인 전 대통령,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등 상부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GP에 들어간 군 병력이 무선영상전송 시스템인 ‘카이샷(KAISHOT)’으로 현장 영상을 청와대 지하벙커(국가위기관리센터)와 국방부에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시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지하투과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와 내시경 카메라는 북한의 거부로 반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장비 없이는 지하 갱도의 부분적인 폭파만 확인할 수 있어 사실상 ‘수박 겉핥기’식 검증이었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나왔다.
실제 현장 검증 이후 북한 철거 GP 11곳 중 5곳에서 1~2개씩 총안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때 국방부는 “해당 총안구가 접근이 불가능한 미확인 지뢰지대에 있거나, 시범철수 대상 GP가 아닌 인근 GP 관할에 있는 것이라는 북한군의 설명이 있었다”고 입장을 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뢰지대에 접근이 어려워 한국 검증단의 직접 확인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도 해당 지역에 북측도 접근이 불가능한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9·19 군사합의의 이행에 매달리다가 부실 검증을 자초했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는 이유다. 남·북 및 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이 이어지는 화해 국면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불능화라는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군의 사실관계 확인 결과 감사나 수사 의뢰로 이어진다면 북한의 도발과 맞물려 총선을 앞두고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감사원은 이미 문재인 정부 당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 지연 의혹 등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여당은 의혹 제기 뒤 즉각 입장을 내고 철저한 진상 파악을 촉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말만 듣고 우리 안보를 무력화한 가짜평화론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며 “(부실 검증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적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을 지낸 김도균 민주당 국방대변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지하벙커는 폭파를 통해서 완전히 파기했다”면서 “(지하투과레이더 등)일부 장비는 현장 검증을 도보로 이동했기 때문에 가져갈 수 없었던 것이지 북한이 가로막았기 때문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가지고 갈 수 있는 라이브캠, 레이저 측정기 등을 챙겨간 것”이라면서다.
김 대변인은 이어 “당시 경력이 있는 중령, 대령들이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한 건데 그 결과가 부실하다면 이들이 직무 유기를 한 것이냐”면서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건 (이번 정부가)9.19 군사합의를 효력 정지하고 전면 파기하려는 의도이자, 정략적 의도라고 밖에 해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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