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교장이라면, 꼭 바꾸고 싶은 세 가지
[이준만 기자]
▲ 교실 |
ⓒ 픽사베이 |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자신의 소원은 대한 독립이라고 했다. 누군가가 백범 선생에게 '폭탄 던지던 분'이라고 말했단다. 당연히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이었다. 여당발 황당 발언 시리즈는 도대체 언제나 끝이 날지 알 수가 없다. 여당발 황당 발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김구 선생의 말씀으로 글을 시작한 게 아니니, 어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방 소도시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평교사로 퇴직했다. 교장이 되고 싶지 않았냐고? 한때 그랬다. 하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았기 때문이다. 교장이 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고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가 알겠다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아이고, 아직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다.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김구 선생은 세 가지 소원이 똑같았지만, 나는 각각 다르다. 교장인 나의 첫째 소원은 '수업 공개 문화 만들기'이다. 둘째 소원은 '연구학교 운영하지 않기'이고 셋째 소원은 '공동 연수 제대로 하기'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 아무나를 붙잡고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수업'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받는다. 수업이 학교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거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있을 듯하다.
그러므로 교사는 수업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는 수업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제도나 장치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상황을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30년 넘게 고등학교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건대 그렇다는 말이다.
교직에 첫발을 디딘 교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수업에 서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처음 얼마 동안은 실수를 남발하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을 할 것이다. 내가 딱 그랬다.
이럴 때 선배 교사가 신규 교사의 수업을 보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면 오죽 좋겠는가. 신규 교사에게는 선배 교사의 충고가, 오랫동안 사막을 헤매다 맛보게 된 샘물 같으리라. 또는 신규 교사가 선배 교사의 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면 처음 교단에 선 신규 교사에게 정말로 크나큰 도움이 될 터이다. 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의 경우 이런 제도는, 서류상으로 존재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험하기 어려웠다.
수업 능력 향상은 오롯이 교사 개인이 몫이었다. 얼마나 더디고 힘들겠는가. 30년 넘게 교직이 있으면서,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다른 교사에게 보여주기를 매우 꺼린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또 다른 교사의 수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일종의 터부로 여기는 듯했다. 조금 과장하면, 이런 경향이 하나의 교직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수업을 보여주고 수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면, 교사의 수업 능력은 갓난아이가 자라듯, 쑥쑥 커질 것이다. 어느 혁신 학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경기도에 있는 중학교였다. 그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3년 정도가 지나면, 그 학교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신규 교사도 수업 전문가가 되어 다른 학교에 수업에 관한 강의를 하러 나갈 정도가 된다고 한다.
아,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한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단 3년 만에 수업 전문가가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그래서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제일 먼저 수업을 공개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제일 염려되는 점은 교사들의 저항이다. 의사 정원을 늘리자고 할 때, 의사들이 사생결단하고 달려드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수업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교직 문화로 정착한 것 같다는 앞서의 이야기를 상기해도 좋겠다. 어떤 교사는 "내 수업은 지나가는 개미한테도 보여주기 싫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니 수업 보여주기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문화를 강제로 바꾸려 한다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최대한 자발적으로 수업을 공개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만일 내가 교장이라면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학교 수업의 질은 몰라보게 좋아질 테고, 지금 학교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의 거의 모든 것은 '수업'이니까 말이다.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연구학교'를 결단코 운영하지 않겠다. 연구학교는 교육부나 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그 정책이나 사업을 먼저 시행해 보는 학교라 할 수 있다.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효과와 보완점 등을 도출하여 더욱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운영한다.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1년에서 2년 동안 특정 운영 과제를 설정하여 운영한 다음 운영 보고서를 제출한다.
30년 넘은 교직 생활 동안 내가 근무한 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받지 않은 때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을 시행하려 했다는 증거라 하겠다.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예산이 넉넉하게 내려오고 연구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연구학교 지정을 반기는 교사들도 있었다. 또 연구학교 지정과 교장의 능력을 결부시키기도 했다.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의 검증을 위해 꼭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한 '연구학교'를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결단코 운영하지 않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의 천편일률성 때문이다. 내가 근무한 학교의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두 그 정책이나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상찬했다. 아주 간혹, 부정적인 효과를 하나 정도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마저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양념 구실을 하는 데에 그쳤다.
또 연구학교는 대부분 애초의 계획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어떤 연구학교 운영 과제를 설정했으면 적용해 보아야 하는데,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운영 과제 자체를 잘못 설정했거나 학사 일정상 운영 과제를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그 운영 과제의 효과는 알 수 없다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마땅하나 그렇지 않았다. 아주 훌륭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적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학교에서 보고서를 그렇게 작성하면 그뿐, 실제로 그러했는지 교육부나 도교육청에서 검증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된 사실 자체를 잊고 지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학기말에 연구학교 담당 교사가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아, 우리 학교가 연구학교였지'라고 깨닫는 교사들이 많았다. 그러니 담당 교사의 요구를 충족하는 자료를 제출할 수 없지 않겠는가. 허둥지둥, 되는 대로 비슷한 자료를 찾아 제출한다. 그래도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는 그럴듯하게 나온다.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의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렇지만 내가 근무한 학교의 연구학교 운영 보고서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연구학교 운영을 결단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운영해도 그럴듯한 보고서를 양산해 내는 연구학교를 굳이 운영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만약 교장이라면, 꼭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은 '공동 연수 제대로 하기'이다. '공동 연수'는 방학식을 마치고 당일 또는 1박 2일로 학교 직원 모두가 학교 아닌 어떤 장소로 이동해서 연수를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연수'의 사전적 의미는 '연구하고 닦음'이다.
기나긴 교직 생활 동안, '연구하고 닦'는 데 방점이 찍힌 공동 연수를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공동 연수의 하이라이트는 술자리를 겸하는 저녁 모임이었다. 그러니 '연수'라고 이름 붙여서는 안 된다. '친목 모임'이라는 이름이 제격이다. 요즈음은 이 공동 연수 참여 여부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학교 공식 행사처럼 여겨졌고 내 교직 생활 초기에는, 공동 연수에 불참하는 것은 거의 반역에 준하는 행위였다.
'연수'라는 이름을 달고는 있으니 생짜배기로 먹고 마시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교직 생활 초기에는 A4 한 쪽 정도 분량의 유인물을 나눠 주고 각자 읽어 보는 것으로 연수를 갈음했다. 아무래도 낯간지러웠는지, 점차 1~2 시간 정도 각 잡고 연수를 진행하는 게 대세로 자리 잡았다. 허나, 자료를 준비한 교사가 약간 열을 내는 듯할 뿐이고 연수를 듣는 대부분의 교사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기 마련이었다. 알맹이 없는 연수인데다, 연수 참석에 대한 자율성이 부여되니 연수 참여하는 직원이 전체 직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직원들의 의견을 물어, 공동 연수 자체를 실시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 연수'는 꼭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며 직원들 간의 친목만을 도모하지 않는, '연수'의 의미를 제대로 살린 연수다운 연수를 실시해야 한다. 지난 한 학기를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더 나은 다음 학기를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직 생활을 되짚어 보면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가진 적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연수'의 의미에 걸맞은 연수를 통해 학교 교육의 질을 현저하게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만일 교장이라면, 바꾸고 싶은 세 가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연구교 운영하지 않기'와 '공동 연수 제대로 하기'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특히 '수업 공개 문화 만들기'는 교사들의 DNA에 뿌리박혀 있는 생각을 뒤흔들어야 하기에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교사들이 수업을 공개하고 서로의 수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면, 교사들은 수업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이 수업 전문가가 되면 수업이 바뀔 테고,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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