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도 제대로 안 돼 잊힌 앨범... 애호가들 인기 얻은 이유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기자]
기대는 빗나갔고, 예상은 맞았다. 이 연재물 이야기다.
애초에 유명한 음반이 아니라 잊힌, 저평가된 음반을 발굴하듯 소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사가 외면 당하리라고 예상하면서도, 새로운 청자들과 인연을 많이 맺어주고 싶다는 기대를 했다. 그러다 얼마 전 "하나도 모르겠다, 어렵다"라는 반응을 받았다. 이 연재물의 조회수도 내가 쓴 다른 기사의 10분의 1도 안 됐다.
낯섦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가수나 밴드, 앨범이니까. 바쁘고 힘든 세상에 대중음악까지 새로 익히려고 끙끙 대야 하느냐는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지적에 반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계속 가보려고 한다. 이 연재물을 읽는 1000여 명의 독자가 있다. 그중 10분의 1이라도 새로 접한 앨범의 매력을 느낀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준 가이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케스트럴(Kestrel)'.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은 세 부류 중 하나다. 조류(鳥類)를 공부했거나, 영어 단어를 아주 많이 알 거나, 록 마니아거나. 케스트럴은 맷과의 새 황조롱이를 뜻한다.
케스트럴은 영국 뉴캐슬 출신 5인조 록 밴드이다. 1975년 동명 타이틀 데뷔 음반 <케스트렐> 한 장만 내놓고 해산했다. 그럼, 끝난 것 아닌가.
아니다. 마케팅도 제대로 안 돼 잊힌 이 앨범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영국 프로그레시브록 계의 성배(聖杯)'라는 어마어마한 별칭을 얻었다. 상태 좋은 오리지널 초반 LP는 해외 유명 음반 사이트에서 2000~3000달러에 팔린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일본과 한국의 희귀 음반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 새로 내기도 했다.
왜? 너무 당연해서 들으면 어이없는 답변이긴 한데, '노래와 연주가 좋다'.
케스트럴은 대학가에서 음악을 하던 이들이다. 밴드의 핵심 데이브 블랙(Dave Black)은 기타리스트다. 데뷔 앨범 수록곡 중 1곡을 제외하고 모두 작곡했다. 키보디스트는 존 쿡(John Cook), 보컬은 톰 노울스(Tom Knowles), 베이스에 펜윅 모이어(Fenwick Moir), 드럼에는 데이비드 휘태커(David Whitaker)다.
▲ 영국 밴드 케스트럴의 데뷔 음반 영국 밴드 케스트럴의 데뷔 음반 앞면은 새 부리 마스크를 쓴 남자를 찍은 1950년대 상업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
ⓒ 최우규 |
음반을 제대로 맛보려면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멜로트론(Mellotron)이다. 1963년 개발된 전자 키보드다. 건반을 누르면 테이프에 녹음된 해당 음이 재생된다. 몽롱하면서도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가장 잘나가던 밴드들이 앞다퉈 연주했다. 특히 클래식과 재즈, 전자음악,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 음악을 록과 혼합한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티스트들은 이 악기에 열광했다.
<케스트럴>에는 8곡이 들어 있다. 4분대 길이 5곡과 7분 안팎의 3곡이다. 길이로 노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짧은 곡은 세련된 팝 지향의 AOR, 긴 곡은 프로그레시브록이다.
첫 곡 '디 애크러뱃(The Acrobat)'은 6분 47초짜리다. 그럼, 이 곡은 프로그레시브록 지향의 곡일까. 맞다. 말랑말랑한 노래로 시작하며 12현 기타와 멜로트론이 귀를 사로잡는다. 여기까지는 팝 지향이다. 중반 이후 방향을 크게 튼다. 존 쿡의 재즈록을 연상시키는 일렉트릭 피아노가 리드하며 곡을 복잡한 구조로 얽는다.
두 번째 곡을 들으면 앞의 인상이 오해였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윈드 클라우드(Wind Cloud)'다. 프로그레시브록과 AOR 감성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컨트리록 냄새를 뺀 이글스(Eagles) 노래 같다.
정겹고 신나는 세련된 록 '아이 빌리브 인 유(I Believe in You)', 피아노가 주도하는 발라드 '라스트 리퀘스트(Last Request)'로 이어진다.
B면 첫 곡은 7분 30초 짜리 '인 더 워(In the War)', 다시 프로그레시브록이다. 키보드와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 경쟁 사이로 어쿠스틱 기타가 뚫고 나온다. 팬들이 프로그레시브록의 특질로 꼽는 '젠체하는, 현학적 코드와 멜로디, 절제하지 않는 연주'를 퍼붓는다.
경쾌하고 시원한 팝 '테이크 잇 어웨이(Take It Away)', 키보디스트 쿡이 만들어 서정과 아방가르드가 교차하는 '엔드 오브 디 어페어(End of the Affair)'가 중간에 배치돼 있다.
▲ 영국 밴드 Kestrel 음반 뒷면 영국 록 밴드 Kestrel의 동명 데뷔 음반 뒷면에는 커피 테이블에 새 부리 마스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
ⓒ 최우규 |
케스트럴은 앞선 10여 년간 대중음악계에서 이뤄진 성취를 데뷔 음반에서 구현했다. 복잡한 프로그레시브록부터 경쾌한 록, 감미로운 발라드까지를 잘 배치했다. 튀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운도 실력이라지만, 이들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소규모 레이블 '큐브 레코즈'는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다.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에 많이 등장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라디오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5년만 일찍 발매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1960년대 중후반 주요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들이 데뷔했다. 1970년대 전성기를 맞다가 조금씩 쇠퇴하던 때다. 펑크(Punk)가 고개를 들고, 디스코가 세계를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밴드 해체 이후 멤버들은 제 갈 길을 간다. 음반 한두 장만 내고 사라진 밴드는 구름처럼 많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다시 살아나는 이들은 희귀하다. 케스트럴은 시대를 이겨내고 부활해 팬들에게 앨범으로 다시 다가갔다.
모든 이들이 케스트럴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걸작 혹은 최고 인기 앨범 순위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스프링(Spring)> <퓨전 오케스트라(Fusion Orchestra)> <어피니티(Affinity)> <이비스(Ibis)>처럼 한 장만 내고 사라졌지만, 지금 들어도 감탄할 만한 앨범 순위 상위에 올라도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음악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nZeBt0Z-tzLDtlQg7pfwnmfYP6RYjQ52E&si=m70lUqpbjrtP5x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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