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보국 나라사랑 세아인 마음에 새긴다 [내 인생의 오브제]

2024. 1. 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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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의 안중근 유묵

매일경제 주간지 제작을 책임지는 김선걸 국장이 2023년 송년호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바라보다’라는 칼럼을 썼다.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가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 따위의 자태를 일삼으랴’라는 뜻의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 그 유묵에 김 국장은 놀랐다고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담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 획 한 획 힘차게 내려쓴 필치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어찌 김 국장뿐이겠는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 20일 전에 썼다는 11자 한자로 된 그 유묵. 110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걸 꼭 갖겠다는 열망에 들뜬 기업인이 있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왼쪽)와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김 회장은 글귀와 필체를 본 순간 약 40년 전 맨땅에서 사업을 시작해 오늘날 세계 1위의 섬유 기업으로 웅비한 본인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마포 공덕동에 18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책상 3개에 전화기·팩스 갖다 놓고 직원 3명으로 시작한 옷 장사. 본인 스스로 그때는 지렁이도 못 됐다고 한다.

서른여섯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자 두 딸이 눈에 어른거렸다. 이를 악물고 창업했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으로 의류 수출 주문을 따내고, 주문받으면 원사를 매입해 편직 업체에 원단 제작을 의뢰하고, 그 후 염색과 봉제 과정을 거쳐 옷 만들던 시절, 그 스스로 당시를 “인생의 불꽃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때”라고 회고한다.

네 살배기 맏딸 세연의 ‘세’자와 두 살 된 둘째 딸 진아의 ‘아’를 이어 붙여 세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짓고 보니 글로벌한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 어차피 의류 제조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비즈니스 아닌가? 세계를 무대로 뛰어야 하는 비즈니스 아닌가?” 2015년 세아상역을 물적분할해 만든 지주회사 이름도 그래서 ‘글로벌세아’였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로부터 안중근 유묵이 경매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김웅기 회장은 직원을 경매장에 보내 “마지막까지 버티라”라고 지시했다. 5억원부터 시작된 경매 가격이 부를 때마다 5000만원씩 올라가면서 전문가가 예상한 금액을 훌쩍 넘겼다. 결국 19억5000만원에 낙찰. 상대방이 가격을 더 올리면 그때는 1억원 단위로 올라타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안중근의 유묵을 봤을 때 평생 느껴보지 못한 흥분이 온몸으로 퍼졌다”며 “기업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보국(報國)의 표상 같은 거였다”고 술회한다.

세아상역은 매출의 95%가량이 수출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의류 기업이다. 1986년 3월 6일 지렁이만도 못하게 출발했지만 이제는 용이 됐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세계 1위의 의류 제조 기업. 당시는 고양이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호랑이의 형세다. 2011년 의류 단일 품목으로 10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첫 기업이 됐으며 지난해는 국내보단 해외에서 그 명성을 알아주는 쌍용건설까지 인수해 매출 6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됐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 세계 10여개 국가에 40여개의 현지법인과 생산공장을 두고 있으며 50여개가 넘는 유명 패션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한다.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이고 달러 버는 애국자다.

“세아인들이 마음에 품을 대한민국의 영웅 한 사람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안중근은 그렇게 우리에게 온 분입니다.”

2025년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 김 회장이 그 목표를 달성할지는 미지수나 비전과 의지는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龍虎之雄勢)다.

[손현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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