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800억 들인 '죽음의 계곡'에 현대차·기아 美 성공 비밀 있었다

우수연 2024. 1.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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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로 모하비 사막을 달리다
美 캘리포니아 시티 주행시험장 가보니…
약 400억원에 땅 구입
야생동물 이주비도 400억
고속주행로 길이 10.3㎞
다양한 극한 환경 연출
성능 테스트 최상의 조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캘리포니아 시티 주변엔 온통 모래밭이다. 보이는 것은 가시덤불과 멀리 보이는 황량한 산, 그리고 하늘뿐이다. 사막 한가운데 놓인 구불구불한 트랙을 전기차로 운전하고 있다. 노면 위에 흩어져있던 모래와 자갈들이 차량 앞 유리를 때리고 지나간다. 그르렁거리는 엔진소리는 없지만 조용한 전기차로 미끄러지듯 사막 위를 달리는 특이한 경험이다. 현대차·기아의 모하비 사막주행장 고속주행로의 길이는 10.3㎞. 국내 남양연구소(4.3㎞) 주행로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최고 속도인 시속 200㎞로 달려도 한 바퀴를 도는 데 3분이 걸린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차량 성능을 극한까지 테스트해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 시티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 전경[사진=현대차]

현대차·기아는 2005년 3000만달러(약 400억원)를 주고 모하비 사막 안에 있는 535만평(1770만㎡)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이 땅에서 원래 살고 있던 사막 거북이·여우, 코요테 등 야생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동물들 이주비도 땅 매입 비용만큼 들었다. 현대차·기아가 거액을 들여 이 지역에 시험장을 조성한 건 다양한 극한의 자연환경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이곳은 전 세계의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 내구성을 시험하기 위해 모여드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미국에서 출시되는 현대차·기아의 모든 차종을 테스트한다. 모하비 사막은 지면 온도가 54도까지 올라가는 무덥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기도 하고, 갑자기 눈이나 비가 내리며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한다. 사계절 내내 매일 다른 조건에서 차량의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모하비 시험주행장은 고속주회로, 소음시험로, 오프로드시험로, 쏠림시험로, 염수 부식시험로 등 12가지의 다양한 테스트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 시티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 내 고속 주회로에서 아이오닉 5N이 달리는 모습[사진=현대차]

최근에는 미국 자동차 시장 트렌드에 맞게 주행시험장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내연기관 위주의 혹서 내구 테스트가 주된 프로그램이었다면, 지금은 전기차의 주행·내구 테스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의 가혹한 오프로드 테스트가 확대됐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무게가 300㎏ 이상 더 나간다. 거대하고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하중을 서스펜션과 타이어, 차체가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터리 열관리도 주요 체크포인트다. 가혹한 주행 환경에서도 배터리 온도가 60도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현대차·기아는 45도 이상의 기온과 ㎡당 1000W 이상 일사량을 보이는 날에만 시험을 진행한다. 혹독한 날을 골라 집중적으로 시험함으로써 전기차의 열관리·냉각 성능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다. 10㎞가 넘는 고속 주회로에서는 전기차의 고속 주행 안정성과 동력성능, 풍절음, 노면 마찰음 등을 평가하며 전기차의 성능과 내구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 시티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 내 '말발굽로'에서 GV70 전기차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사진=현대차]

내구시험로는 길 위에 작은 요철들이 박혀있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이 길은 가혹도가 높아 1만마일(1만6000㎞) 정도만 달려도 10만마일(16만㎞)을 주행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배터리가 차량 바닥에 깔려있는 전기차는 차량 하부 충격에 대한 내구성 평가가 필수다. 현대차·기아는 내구 시험로에서 한 모델당 약 500번의 주행을 해본다.

오프로드 시험로는 사막의 지형을 충분히 활용한 코스다. 기아의 내연기관 SUV인 사륜구동 쏘렌토를 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려봤다. 차는 울렁였지만 두 바퀴만 땅에 닿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깊은 구덩이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하비 시험 주행장이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오프로드 시험로가 1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7개 코스로 늘어났다. 전 세계적인 SUV 유행에 발맞춰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 시티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모하비 주행시험장 내 바위 시험로[사진=우수연 기자]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량 기준 현대차·기아는 업계 4위에 올랐다. 현대차·기아의 판매량이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시장 빅3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준까지 바짝 쫓아온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시험검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량 개발을 현지화한 영향이 컸다. 현대차 북미기술연구센터(HATCI)를 중심으로 R&D 현지화 체계를 구축하면서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현지 공장 생산을 늘렸다. 이를 통해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한 박자 빠르게 신차를 출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승엽 현대차 HATCI 부소장은 "현재 북미 시장에서 출시되는 승용차의 80%가 SUV 또는 픽업트럭으로 거의 모든 차들이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선 다양한 환경의 시험장을 설치해 개발 단계별로 철저하게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시티(미국)=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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