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전시]에드몬드 브룩스-벡만展·고려명 개인전 'THE PODO' 外
편집자주 - 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에드몬드 브룩스-벡만 'Into the clamour of words' = 갤러리 두아르트 스퀘이라는 영국 작가 에드몬드 브룩스-벡만의 첫 서울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생성과 소멸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포착하는 작가의 덧칠, 조각, 자르기 기법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팔림프세스트 palimpsests' (원본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덧그린 작업) 회화 시리즈를 소개한다.
두껍게 쌓인 유화 물감의 층과 진화하는 시각적 언어로 엮어낸 상징을 통해 작가는 가족사, 개인적 경험, 그리고 동시대 의식을 탐구해나간다. 전시는 한 가지의 주제나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직감에서 우러나온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의 증거를 모아놓은 작업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수집하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그들의 혀를 통해 직접 말하거나 손길을 통해 표식을 남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음에도,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자신만의 언어적 제스처를 형성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전시의 작업은 본능적으로 표식을 만드는 행위에 의존하지만, 눈을 감고 완전히 포기한 채로 작업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몸이 재료에 직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에 맞는 일련의 상징을 만들었다. 이러한 조건 중 하나는 땅에 대한 그의 인식이 크게 변화한 데서 비롯됐다.
작가는 땅을 오브제, 특히 ‘테필린 Tefillin’이라는 유대인의 두루마리와 기도 상자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맥락에서 작가는 표식과 자신의 관계가 양피지 같은 표면 위에 글을 쓰거나 명판에 조각하는 것과 같은 특성을 띠고, 단어와 숫자는 소재와 주제를 결합한다고 부연한다. 전시는 3월 9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52길 두아르트 스퀘이라.
▲고려명 개인전 'THE PODO' = 금산윈도우갤러리는 올해 첫 전시로 고려명 개인전 'THE PODO'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포도를 오브제로 작업한 작가의 최신작 8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피사체인 포도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근접 촬영한 후 대형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편 근원적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사진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 관람을 통해 관객은 희망찬 새해의 풍요와 번영을 소망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스페오스 사진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와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정통 사진 기법으로 오브제를 촬영한 뒤 선을 강조하는 인화 기술로 최대한의 가시성을 추구하며 극사실주의 사진을 결과물로 뽑아낸다. 독일제 대형 카메라에 이스라엘산 우주 관측용 특수 필름을 넣어 촬영하기 때문에 윤이 나는 포도알 표면에 앉은 분가루, 주름까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작품 속 포도의 표정이 모두 다른 이유이며 가지각색의 포도들은 시간에 따른 질감의 변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블랙의 어두운 포도 위 수놓아진 금박의 포도알에는 탱화에서 비롯한 정신과 가치를 담고 있다. 포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생명과 풍요 그리고 문화적 번영의 엠블럼으로 장식 또는 작품 주제로 자주 묘사되었는데 이는 포도가 길상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한 송이에 열리는 무수한 포도알은 자손의 번창으로 해석된다.
전시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암시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작품 속에 담긴 에너지, 생명력을 통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소망하며 공감의 소통을 원하는 작가의 사진 작품 8점을 선보인다. 손바닥만 한 작은 물체가 눈앞에서 거대한 형태로 인화된 것을 통해 작품은 이질감과 색다른 충격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전시는 22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로 금산윈도우갤러리.
▲박미정 개인전 '보내야 하는 사물들을 위한 정물, Mourning' = 룩인사이드 갤러리는 박미정 개인전 '보내야 하는 사물들을 위한 정물, Mourning'을 개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벽돌 파편, 나뭇조각, 전구, 플라스틱 일회용 커피 컵, 달걀판, 수세미, 비닐이나 끈 같은 버려진 사물과 가위로 오린 종이꽃을 배치한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들, 한때 소중한 사물로 곁에 두었지만 쓰임을 다해 잊히고, 사라지는 사물들에 대한 아름다운 애도로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작업의 모티브를 이같이 설명한다. 어린 시절 종이 인형 놀이를 하며 가위로 오린 종이옷들을 조합해 입히고 어떻게 하면 인형을 예쁘게 꾸며줄까 상상하곤 했었다는 작가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작업에서 용도가 사라진 사물들과 살아있지 않은 종이에 옮겨진 꽃의 형상을 함께 만지고 배열하는 작업을 통해 곧 사라져 버릴, 쓰임을 다한 사물들을 예쁘게 꾸며서 애도해 주고 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주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전시 서문에서 "작가는 버려진 사물들을 모아 생명을 부여하고자 했다. 해서 하찮은 것들, 비루한 것들이 모여 꽃을 피운 형국을 연출했다. 쓸모없어지거나 용도가 폐기되거나 공사 현장에서 나온 부스러기들 혹은 인간의 실용적 차원에서 배제된 것들끼리 우연히 모여 희한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빛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모든 사물의 존재 의미는 바로 그것을 이해하려는 현존재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주며, 이처럼 사물은 고정된 의미에 저당 잡힌 게 아니라 사용되는 바로 그 순간이 그 존재 이유로 매 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 대해 "용도의 전후, 실재와 재현, 착시와 현시 그 사이에서 나의 감각은 느린 여행을 한다"고 설명한다. 사물에 대한 애도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처럼 사물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전시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7길 룩인사이드 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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