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눈밭 위 희게 빛나는 숲속 풍경의 주인공
2024년이 시작됐습니다. 늘 새해가 되면 뭔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서 설레기도 하고 그럴듯한 계획도 세우곤 하죠. 한편으로는 아직은 너무 추워서 봄이 오면 그때 시작하자면서 조금은 게을러지는 때이기도 해요. 겨울은 자연의 생물들에게도 혹독한 시기입니다. 저마다의 생존 전략으로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있긴 하지만요.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조용히 숨죽이며 따듯한 봄이 오길 기다립니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기둥과 줄기가 전부 드러난 나무들은 이즈음에 나무껍질이 눈에 띕니다. 저마다 껍질 모양이 다른데, 그중에서도 순백의 껍질을 갖고 있는 자작나무가 특히 인상적이죠. 이번에는 자작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자작나무는 희고 윤이 나는 껍질 덕분에 숲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어 ‘숲속의 귀부인’이라고도 불려요. 자작나무 껍질에는 기름 성분이 있어서 불에 잘 타고 또 오래 탑니다. 불에 잘 타는 성질 때문에 불쏘시개나 횃불로 사용하기도 했죠. 불탈 때 나는 ‘자작자작’ 하는 소리 때문에 자작나무란 이름이 되었다고 해요. 말장난인 듯싶지만 『세종실록』
「지리지」
등 고문서에 ‘자작목(自作木)’이라고 표기돼 있다고 하니 우리 고유어인 것으로 보입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樺)’라고 쓰는데요. ‘화촉을 밝힌다’라고 할 때 원래는 이 자작나무 화자를 썼다고 해요. 지금은 화(華)라고 쓰죠.
자작나무는 껍질이 겹겹이 얇게 옆으로 벗겨지는데 마치 종이 같습니다. 겹겹이 쌓으면 두꺼운 종이처럼 되어 꽤 질기죠. 그래서 과거에 종이가 없을 때 종이 대용으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영어로 자작나무를 ‘birch’라고 하는데 ‘글을 쓰는 나무껍질’이란 뜻이죠.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견된 유물 중 ‘천마도’가 있습니다. 천마도는 말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졌는데, 그 재료가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에요. 자작나무는 만주·시베리아·북유럽 등에서 잘 자라며 한반도에서는 중부 이북지역에서 잘 자라니, 당시 신라에서는 자작나무가 자라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고구려에서 자작나무 껍질을 수입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자작나무는 나무의 질이 좋고 벌레가 잘 먹지 않아 건축재·조각재 등으로도 많이 쓰여요.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죠.
그런데 자작나무는 왜 껍질이 흰색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학자들은 눈이 많은 지역에서는 눈에 비친 햇빛의 복사열로 나무껍질의 표면온도가 변할 수 있는데 그것을 다시 반사해서 온도 변화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해요. 또 내부의 온도 방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추운 지역에서 자작나무가 잘 견디는 이유는 뭘까요? 일반적으로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는 낙엽수들은 대부분 겨울엔 광합성을 하지 않아서 물의 이동이 많지 않아 잘 얼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변 온도가 너무 낮아지면 나무들도 얼게 되죠. 약 영하 40도 정도면 대부분의 나무가 언다고 합니다. 자작나무와 같이 추운 지역에 적응된 나무들은 나무껍질 안의 내수피로 광합성을 하며 양분을 만들어 에너지를 만들기도 하고, 따듯한 지역의 나무보다 물관을 작게 만들어서 수액의 농도를 조절해서 잘 얼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자작나무의 경우 영하 70도에서도 잘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작나무는 꽃가루나 씨앗의 이동에 바람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씨앗도 매우 작고 가벼운 데다 날개가 달렸어요. 많은 식물들이 꽃가루받이할 때 곤충의 도움을 받지만 워낙 추운 곳에서 사는 자작나무는 곤충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스스로 주변 환경에 맞춰 살아가며 번식하는 자작나무가 대견합니다. 곤충의 도움은 받지 않으면서도 애벌레에게 잎을 제공하거나 월동하는 곤충들에게 몸을 제공해주는 넉넉함도 갖고 있어서 더욱 멋지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은 추운 계절입니다. 춥다고 실내에만 있거나 난방을 너무 강하게 하지 말고, 옷을 조금 두껍게 껴입거나 운동을 하거나 활동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에너지 활용은 줄이고 내 몸도 지구도 건강해지는 겨울이 되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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