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와 장남 싸움으로 번졌다…한미약품의 OCI 합병 전말

최은경, 윤성민 2024. 1.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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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윤 사장 “이우현 회장 만나 포기 설득”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중앙일보


에너지·화학 기업 OCI와 제약 기업 한미약품의 통합 선언이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2일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와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통합 지주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지주사 간 통합 발표로 한미약품은 형제자매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13일 엑스(옛 트위터)에 “이번 발표에 대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고지도 받은 적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한미사이언스는 14일 “이번 통합 절차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이라며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지만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있지 않다”고 밝혔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독자 결정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내 경영계에서 드문 이종(異種) 그룹 간 통합


앞서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는 현물 출자와 신주 발행 취득을 통해 지주사를 통합하기로 약정했다. OCI홀딩스는 7703억원을 들여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27%를 보유하고 임 창업주의 부인과 장녀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은 OCI홀딩스 지분 약 10.4%를 취득한다. 통합 절차가 끝나면 두 기업은 OCI홀딩스를 통합 지주사로 두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거듭난다.
김경진 기자

새마을금고 뱅크런에서 시작


한미사이언스가 이번 합병을 주도한 건 상속세와 관련이 깊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미약품 오너가는 2020년 임 창업주의 사망으로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다. 한미약품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거래에 참여하기로 한 새마을금고가 부실 논란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겪으며 투자를 철회했다. 이후 송 회장 등이 지난해 10~11월부터 OCI홀딩스와 통합을 추진했다고 한다. 회사를 지키면서도 상속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복안이었다. 라데팡스는 이번 거래의 총괄 자문을 맡았으며 이우현 OCI그룹 회장과 임주현 실장이 통합을 논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동종 기업과 합치면 독립 경영을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어 신뢰가 있으면서 우호적인 이종 기업과 통합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통합 결정 과정에서 미술관 경영 등으로 평소 알고 지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모친) 등 오너가에 신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e-메일에서 “30대 기업(2023년 기준 OCI 38위)으로 단숨에 도약하게 됐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OCI는 지주사 통합을 밀어붙일 모양새다. OCI는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기존 확보한 헬스케어 경쟁력을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OCI는 2018년 제약·바이오 사업에 진출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지만 2년 연속 적자 상태다. 업계에선 OCI가 이번 계약으로 부광약품을 살릴 길을 찾으면서 신약 개발 역량도 얻었다고 봤다.

김경진 기자

임종윤 사장 “이우현 회장 만나 논의”


하지만 지주사 간 통합까진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일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반발하고 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동생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통합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모친과 임주현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OCI는 신약 개발 전문성이 없는 회사로 합병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임 사장은 이사회 결의 과정의 적법성을 따져본 뒤 이르면 이달 15일 법적 대응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임 사장 측은 “상속세 재원 마련 방안을 모친과 동생에게 제시했지만 듣지 않았다”며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임 사장은 14일 이우현 회장을 직접 만나 통합 포기를 설득했다. 임 사장은 만남 뒤 중앙일보에 “이 회장이 이런 한미약품의 내홍을 몰랐다며 놀라더라. 서로 세부 사항을 파악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지주사 간 통합이 끝나면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는 OCI홀딩스(지분율 27%)가 된다. 임종윤·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지분은 약 17.7%로 내려간다. 이밖에 주요 주주로 임성기 창업주의 후배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1.12%)이 있다. 현재는 모녀와 형제, 신 회장의 지분율이 각각 21.88%, 20.47%, 약 12%다. 한미약품은 “신 회장은 그동안 한미 최고 경영진의 든든한 우호지분 보유자로서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통합에 대해서도 같은 뜻으로 지지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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